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46. 흰나물



  열여덟 살을 살아가는 큰아이하고 논두렁을 걷는 어느 늦봄날, 찔레꽃을 한 송이씩 훑으며 먹다가, 마삭줄꽃은 두 송이씩 훑으며 먹습니다. 큰아이가 ‘마삭줄’이라는 이름이 안 떠오르는 듯 “어, 무슨 꽃이었더라?” 하기에 “꽃을 보면 뭐가 떠오르지 않니?” 하고 묻고는 “네가 어릴적에는 바람개비를 닮았다고 여기면서 ‘바람개비꽃’이라고 했어. 다른 사람들도 꽤 ‘바람개비꽃’이라고 말을 해.” 하고 덧붙입니다. 우리는 고작 쉰 해쯤 앞서 1975년 언저리까지만 해도 으레 들숲메에서 풀꽃과 나무꽃을 따서 나물로 삼았습니다. 다들 긴긴 겨울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들숲메를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나물을 캐고 꽃을 먹고 장작을 날랐습니다. 요사이는 “꽃을 그냥 먹어도 되나요?” 하고 묻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괭이밥꽃이나 씀바귀꽃이나 잣나물꽃이나 꽃마리꽃이 모두 나물인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꽃이 핀 돌나물꽃도 즐겁게 누릴 만하지만, 쑥갓꽃도 고스란히 나물인데, 어쩐지 들살림과 숲살림과 멧살림을 몽땅 잊다가 잃는구나 싶습니다. 서울에서 일하며 살다가 합천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즐겁고 야무지게 살아가는 이웃님을 만나러 가는 시외버스에서 문득 ‘흰나물’이라는 이름이 떠오릅니다. 적잖은 나물꽃이 ‘흰빛’이더군요. 한겨울 흰눈은 나물은 아니되, 눈내리는 겨울이면 입을 크게 벌리고서 그대로 눈송이를 받아먹으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네철 내내 다 다른 흰빛을 밥으로 나물로 꽃으로 빛으로 숨결로 넉넉히 누리면서 어른으로 자랐구나 싶어요.



흰나물


둘쨋달에 매나무꽃 먹고

이윽고 흰민들레 먹는데

냉이꽃 피기 앞서 캐고

새봄에 잣나물꽃 누려


넷쨋달에 딸기꽃 가득해

어느새 앵두꽃 소복하고

닷쨋달에 찔레꽃 훑다가

마삭줄꽃 달콤히 딴다


엿쨋달에 감쫓 주울까

봄끝에 이팝꽃 넘실댔고

한여름에 파꽃 동그랗고

슬금슬금 부추꽃 오른다


고추꽃은 고추 못잖게 매워

나락꽃은 밥알 닮은 냄새야

흰눈은 겨울에 덮는 꽃송이

하얗게 별이 돋으며 잠든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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