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한 달 뒤 (2025.4.28.)

― 서울 〈악어책방〉



  어쩐지 숨막히는 날에는, “여태 쓰던 낱말”을 내려놓고서, “내가 다섯 살일 적에 쓰던 낱말”을 떠올려 봅니다. 남(사회·정부·작가·기자)이 어떤 낱말을 쓰든 말든 안 쳐다볼 노릇입니다. ‘그들(남)’이 휘두르는 ‘힘말·이름말·돈말’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나로서 나답게 날갯짓을 펼 낱말을 살펴요.


  이른바 ‘자기·자신·자아’ 같은 한자말로는 ‘나’를 못 찾습니다. ‘나’부터 열어야, 나랑 마주하는 ‘너’를 보고, 나를 ‘낳’은 너(어버이)를 볼 수 있으며, ‘너머’라는 길을 헤아리면서 ‘넘실’거리며 ‘넘’으려는 빛을 봐요.


  그저 흔하고 수수해 보이는 작은 말씨 하나부터 새롭게 짚으려고 하기에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낼 길을 찾아요. 남들이 멋스럽게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낱말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탓에 ‘나’를 ‘남’한테 맞추다가 넘어집니다. 남들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대단해 보이더라도, 그저 수수하게 숲마냥 ‘나’를 마주하고 품으면서 달래기에, 내 손과 발과 눈과 몸으로 ‘낳’을 빛나는 씨앗 한 톨을 찾아요.


  오늘 서울로 달려온 김에 목동에 열었다는 〈사진서가〉를 들르려 했으나, 마침 달날에 쉽니다. 달날에 서울마실을 하면 끝내 못 갈 듯싶지만 다음을 그리면서 우장산역으로 달립니다. 참말로 땀내면서 신나게 달립니다. 〈악어책방〉에 허둥지둥 닿아서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같이 생각씨앗을 심는 저녁을 누립니다.


  ‘담배맛’이란 뭘까요? 담배를 태우기에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손수 담배씨를 심고서, 담뱃잎을 오래오래 말린 끝에, 다시 손수 담뱃잎을 재우고 다듬어서 돌돌 말아서 태우는 내음이어야 환해요. 가게에서 아무렇게나 사서 뻑뻑 피우다가 꽁초를 길바닥에 휙 집어던지는 길로는 마음을 다독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바쁘다는 핑계입니다. 힘들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숨을 쉬려고 해도 힘을 써야 하는걸요.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모든 나날이 ‘힘쓰기’입니다. ‘힘을 들여’야 살아가니, 얼핏 보면 다 ‘힘들’게 마련인데, 힘을 들여서 ‘무엇’을 하려는지 바라볼 노릇이에요. 힘들여서 투정을 부리거나 투덜대려는지, 힘을 써서 꿈을 그리고 살림을 가꾸려는지, 힘들여서 싸우려는지, 심(힘)는 나로 서려는지 봐야지요.


  오늘 자리를 마치면 “한 달 뒤”에 새로 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쪽글을 쓰고서, 쪽종이 한켠에 “한 달 뒤”라고 적어 놓습니다. 한 달 사이에 ‘새노래’를 쓰기로 합니다. 새노래란, 새로운 노래이자,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이자, 사이를 잇는 노래입니다. 함께 낱말책을 새롭게 쓰고, 같이 말빛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서로 이야기로 생각꽃을 지피는 즐거운 자리를 이룰 수 있어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진주 글·가희 사진, 핑거, 2024.9.12.첫/2025.3.20.3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