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15. 빛꽃



  ‘사진’이란, “빛으로 그린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빛으로 그리기 앞서 먼저 삶으로 온마음과 온몸에 새긴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이고 모이던 어느 날 문득 눈을 뜨면서, 이 눈빛을 손끝으로도 옮기면서 가만히 태어나지 싶다. 삶을 바라보는 눈길을 스스로 온마음으로 살려서 온몸에 흐르는 기운을 하나로 그러모아서 가볍게 찰칵 누르는 사이에, 마치 새봄을 기다리던 망울이 사르르 벌어지듯 꽃봉오리가 열리는 셈이라고도 느낀다. 사진이란 빛그림이면서 빛꽃이겠네 하고도 느끼고, 찰칵 하고 찍으려면 마음이라는 종이에 숨결이라는 빛을 살며시 얹으려고 속눈을 뜰 일이라고 본다.


  꽃은 언제 어떻게 왜 피어나는가? 꽃은 누구한테 보이려는 숨빛인가? 꽃은 어떻게 망울을 맺어서 제철에 슬며시 부드럽게 춤출 수 있는가?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수수하게 꽃을 피운다. 모든 나무는 다 다른 철에 꽃빛을 천천히 잇는다. 풀꽃이 갖은 빛깔로 알록달록 물결치고, 나무꽃이 투박한 잎빛이며 옅고 맑은 빛으로 더없이 조그맣게 너울친다. 사람이 그리는 한칸그림이란, 이 한칸으로 오늘까지 지은 살림길을 드러내면서, 오늘부터 빚으려고 하는 사랑길을 얹는다고 할 만하다.


  한밤에도 찰칵 담는다. 낮에는 해가 있다면 밤에는 별이 있기에, 햇빛과 별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낮과 밤에 다른 빛살을 얹어서 이야기를 이룬다. 한밤에는 고요하면서 차분한 빛줄기를 더욱 천천히 얹는다면, 한낮에는 왁자지껄하면서 즐거운 춤짓으로 더욱 빠르게 얹는다.


  눈으로만 본다면 속빛을 잊는다. 감은눈을 뜨려 하지 않으면 어느새 갇힌다.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살갗과 마음과 머리를 고루 어우르기에 빛꽃이 한 송이 핀다. 그저 줄줄이 잇지 않을 줄 알기에, 찰칵 담아내고서 틈을 두어서 둘레를 새롭게 돌아보고 나서야 다시 찰칵 담을 줄 알기에, 틈을 틔우기에 틈꽃으로 한 자락 다시 피어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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