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8. 종이에 적는 글
예전에 굳이 ‘글(시·문학)’을 쓴다고 여기지 않을 적에는, 둘레에 있는 어느 종이에라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마음빛을 몇 줄로 옮겨서 건네었다. 이를테면 ‘젓가락 싸개’라든지 ‘수저 싸개’라든지 ‘밑종이(휴지)’라든지, 어느 종이에라도 몇 마디나 몇 줄을 적어서 이웃님한테 드렸다.
요즈음은 ‘글(마음을 그리는 이야기)’을 적어서 건넬 적에 이웃님이 차분히 되새기고 돌아보면서 이웃님 마음속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음씨앗’으로 삼아 보시기를 바란다. 한동안 네모반듯하게 빛종이(색상지)를 잘라서 적어 드렸는데, 여느종이에 연필로 적은 글은 이내 연필자국이 번지는 줄 느꼈다. 그래서 글씨가 안 번지는 붓과 종이를 헤아려 보았다. 여러 종이를 헤아리며 써 보다가, 천종이(캔버스)는 손이 닿거나 오래 있어도 잘 이을 만하다고 느껴서 천종이를 쓰기로 했다.
천종이에 글을 적어서 건네려면 돈이 좀 많이 듭니다. 천종이에 글을 적어서 건네는 만큼 살림돈이 줄어든다. 다만, 이쯤은 즐겁게 할 만한 이웃나눔이라고 느낀다. 또한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돈으로 이웃나눔을 하는 길”보다는 “마음을 사랑하는 글을 스스로 늘 새롭게 써서, 이 ‘마음사랑글’로 이웃나눔을 하는 길”을 가자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즐겁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이웃나눔은 “마음사랑글을 늘 새롭게 써서 건네주는 일”이라고 본다. 제법 오래 건사할 만한 천종이를 목돈을 들여서 장만하고, 꽤 품을 들여서 천천히 옮겨적은 다음에 건넨다. 어느 분이 보기에는 천종이쯤이야 돈이 얼마 안 들겠지. 나한테는 목돈이 드는 일이다. 나는 2003년에 마지막으로 출판사를 그만둔 뒤로 2025년에 이르도록 ‘한달벌이(월평균수입)가 50∼70만 원’이거든.
쥐꼬리만 한 한달벌이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쥐꼬리만큼 쓰면 쥐꼬리만큼 벌면서 살아갈 수 있다. 아무쪼록 이웃님 누구나 즐겁게 글빛을 누리시기를 바라기에 천종이를 골라서 품과 돈을 들여 새글을 옮겨적어서 건넨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