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3.7.
《엄마의 골목》
김탁환 글, 난다, 2017.3.3.
어느덧 열여덟·열다섯 살인 두 아이인데, 해마다 ‘취학유예 신청서’를 써야 한다. 오늘은 ‘의무교육관리위원회 참석’까지 하라고 한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13:00에 잡고서 면소재지에 가야 하니 아침부터 집안일로 부산하다. 그런데 면소재지 어린배움터에서 갑자기 전화를 한다. 이모저모 따지니 우리 두 아이는 굳이 ‘취학유예’를 할 까닭이 없겠단다. ‘장기결석’으로 하면 된단다. 벌써 열한 해나 된 일인데, 여태 ‘장기결석’으로 해놓고서 왜 그랬을까. 그러나 ‘제도권학교 교사’는 우리 두 아이 같은 ‘전남 학교밖청소년’이 아무런 이바지(전남교육청 지원)를 못 받는 줄 하나도 모른다. 뭐, 벌써 열한 해째 된 일이니까. 《엄마의 골목》을 곰곰이 읽었다. 뜻깊게 쓴 책이라고 느끼면서도 못내 아쉽다. ‘엄마’한테도 ‘골목’한테도 그닥 못 파고들었다고 느낀다. 바쁜 틈을 짜개어서 조금조금 같이하는 길이라면 골목살림을 못 보기 쉽다. 봄에 누가 봄꽃을 보겠는가? 바쁜 사람은 누구도 봄꽃도 봄바람도 봄구름도 봄별도 봄잎도 봄내음도 봄흙도 봄샘도 봄나비도 봄벌레도 모른다. 이미 셋쨋달 첫머리부터 노랑나비가 날아다니는데, 나비가 날려면 애벌레로 잎갉이를 해야 하고, 시리디시린 겨울에도 용케 추위를 견디며 늘푸른나무를 갉으면서 살아낸다. ‘-의’를 그냥 붙이는 일본말씨를 쓰기에 잘못일 수 없으나, “엄마와 걷는 골목”이라든지 “엄마 곁에서 골목”이라든지 “엄마가 놀던 골목”이라든지 “엄마아빠와 함께 골목”처럼 ‘-의’로 뭉뚱그리는 말이 아닌 ‘나로서 나부터 무엇을 하려는 길인가’ 하고 밝힐 줄 알아야 한다. 글이란, 글쓴이 모든 민낯과 속낯과 참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다. 김탁환 님은 어쩐지 이녁 낯을 자꾸 감춘다. 왜 감추지? 왜 그냥 못 쓰지?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