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라, 펜 4
시마모토 카즈히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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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3.14.

날을 잡다


《울어라 펜 4》

 시마모토 카즈히코

 이정운 옮김

 미우

 2024.8.31.



  달종이를 보면서 날을 잡으면 곧잘 어긋납니다. 해와 달과 날은 그저 그대로 흐르지만, 달종이는 첫이레와 두이레와 세이레와 네이레가 늘 다르거든요. 그런데 달종이에 따라 이레를 잘못 읽거나 보더라도, 이렇게 어긋나는 길을 서로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언제나 다 다른 사람이고 삶인데, 다 다른 줄 잊거나 놓치면서 보내기도 하거든요.


  네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과 다릅니다. 내가 하는 말도 네가 하는 말하고 달라요. 얼핏 보면 “똑같은 말소리”라 하더라도 말결과 말빛과 말씨가 다릅니다. 이를테면 “탄핵하라!”라고만 말하면 그냥 똑같아 보이지만, 누구를 끌어내리려 하는가 같은 대목은 아주 다릅니다. “우두머리를 탄핵하라!”라든지 “꼭두각시를 탄핵하라!”라 외칠 적에도 마찬가지예요. 저마다 ‘우두머리·꼭두각시’가 누구인가 다르게 바라볼 만합니다.


  《울어라 펜 4》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첫걸음과 두걸음은 꽤 볼 만하다고 여겼으나, 석걸음과 넉걸음은 어쩐지 그림감이 떨어졌는지 늘어지거나 짜깁기 같다고 느낍니다. 일부러 이렇게 그렸을 수 있되, 늘 불타오르듯 그리려고 하면 거꾸로 다 불타고 말아 잿더미가 될 수 있어요. 《울어라 펜 4》은 재가 되고 만 얼거리 같습니다.


  그러나 재가 된 얼거리라서 나쁘지 않아요. 이렇게 불타오르기만 하면 그만 잿더미가 되는 줄 알아보면 되어요. 알아보고서 배우면 됩니다. ‘불’이란, 들끓는 젊음이기도 하고, 아직 철들지 않은 채 활활 타오르다가 꺼지고 마는 몸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나다·부아나다’란 ‘화나다(火-)’를 가리켜요. 불을 내기에 앞뒤를 못 가립니다. 불타오르기에 앞뒤옆을 아예 못 봅니다. 불타다가 재가 되는 바람에 “왜 일어나려고 했는지 까맣게 잊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어느 모지리 우두머리를 끌어내리려는 뜻을 잘 읽고 짚어야 합니다. 모지리는 한 놈이 아닙니다. 두 놈이나 석 놈이 아닙니다. 벼슬을 거머쥐고 돈과 힘과 이름까지 움켜쥔 모지리는 수두룩합니다. 온나라를 앞뒤옆에서 휘감은 숱한 모지리를 다 끌어내릴 때라야 비로소 이 나라는 아름길로 거듭날 수 있어요.


  붓끝은 천천히 놀릴 노릇입니다. 휩쓸리듯 붓질을 하다가는 스스로 타오르다가 스스로 사그라듭니다. ‘붓’은 ‘불’이 아닌 ‘풀’빛으로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붓빛을 풀빛으로 다스리면서 ‘물’빛으로 어우를 적에는, 들물결이 싱그러이 일어나면서 온누리를 푸르게 적시고 살릴 수 있어요. 그러나 붓질을 불질로 이글이글 태우면, 너도 죽고 나도 죽으니 우리가 함께 죽습니다. 불질로 치달을 적에는 쌈박질로 고꾸라져요. 불질이 아닌 풀숲과 물결로 나아가야 비로소 어깨동무를 이루는 보금자리를 바라봅니다.


  겨울이 스러진 봄날입니다. 아니, 겨울이 살그머니 떠난 봄날입니다. 봄에는 봄꽃을 보드랍게 보면서 느긋이 살림을 차곡차곡 여미는 하루입니다. 봄이기에 봉긋봉긋 꽃망울과 잎망울을 들여다봅니다. 봄이기에 방긋방긋 웃음짓는 매무새로 새롭게 일어섭니다. 홀가분히 날을 잡습니다. 가뿐가뿐 날짜를 헤아립니다. 나들이를 할 즐거운 날을 하루 잡아서 길을 나섭니다. 반갑게 만나서 수다꽃을 피울 날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ㅍㄹㄴ


“나 자신이 생각해낸 거다! 설령 누군가와 소재가 겹쳤다 해도! 샛길로 도망칠 필욘 없으니!” (33쪽)


“여기서 그만둘 수 있을 정도면, 처음부터 첫걸음도 내딛지 않았어!” (111쪽)


“만화 작품은 그려 본 적 있고?”“없습니다!” (159쪽)


“꿈을 추월했을 때야말로 이번에는 우리가 빛이 되는 거야! 핑크!” (183쪽)


#吼えろペン #島本和彦


《울어라 펜 4》(시마모토 카즈히코/이정운 옮김, 미우, 2024)


그 자리만 무사안일주의로 넘겨보려는 토그만 늘어놓고!

→ 그 자리만 뺀질뺀질 넘겨보려는 수다만 늘어놓고!

→ 그 자리만 슬그머니 넘겨보려는 말만 늘어놓고!

→ 그 자리만 얼렁뚱땅 넘겨보려는 얘기만 늘어놓고!

65쪽


너도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천년만년 히어로는 될 수 없다

→ 너도 바람을 느낄 수 있지 않으면, 자나 깨나 으뜸꽃은 될 수 없다

→ 너도 바람을 느낄 수 있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별꽃은 될 수 없다

76쪽


풍압에 찌그러지시겠어

→ 바람에 찌그러지겠어

→ 바람힘에 찌그러지겠어

77쪽


양자의 아우라가 지금 서로 충돌하여 길항을 이루고 있다

→ 두 빛이 이제 부딪혀서 나란하다

→ 두 빛줄기가 막 부딪치며 버틴다

→ 두 기운이 바로 맞받으며 비금비금하다

79쪽


막상막하의 대결로 몰고 갔고

→ 비슷비슷하게 맞붙고

→ 엎치락뒤치락 버티고

14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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