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39
《예비군교련지침》
편집부 엮음
향토방위출판사
1971.2.1.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무렵에 옛자취를 들려주던 길잡이가 불쑥 “너희 같은 애들은 조선이든 고려이든 고구려이든 역사책에 이름이 남지 않아. 사내놈이라면 열세 살 무렵부터 군대에 끌려가거나 성쌓기나 궁궐짓기에 붙잡히지. 그러고서 예순 살에 이르러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텐데 그때까지 살아남겠니?” 하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참말로 ‘국사’ 배움책에는 시골에서 수수하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흙살림을 지은 사람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땅을 부치고 아이를 보듬었을 텐데, 밥은 어떻게 짓는다든지, 아기한테 기저귀는 어떻게 대고 빨래했다든지, 어떤 자장노래를 불렀고, 아이들은 어떤 소꿉놀이에 소꿉노래를 누렸는지 한 줄로도 없습니다. 1997년 12월 31일에 싸움터에서 벗어났기에 이듬해인 1998년부터 예비군훈련에 끌려다녔습니다. 인천·서울·충주·고흥 네 군데에서 해마다 몇 날씩 끌려가야 하는데, ‘집안일·아이돌봄을 도맡는 아버지’여도 아기를 떼놓고 나가야 했습니다. ‘가정주부 아저씨’는 아예 없다고 여기는 셈이랄까요. 《예비군교련지침》은 ‘大韓鐵鑛開發株式會社 裏陽鐵鑛所 所長用’이란 글씨가 남습니다. 철광소에서까지 따로 예비군훈련을 하던 지난날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은데, ‘나이 마흔’은 얼른 넘어야겠다고 여겼어요. 적어도 마흔이 넘어야 예비군이건 민방위이건 짐을 훌훌 벗거든요. 싸움나라에서는 모두 차꼬에 발목이 매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