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28. 놈



  끌어내릴 ‘놈’은 끌려내려온다. 그런데 우리가 ‘놈’을 끌어내리면서 그놈한테 갖은 막말(욕)이나 비아냥(폄하)을 섣불리 한다면, 이런 막말과 비아냥은 언제나 우리한테 돌아온다. 놈한테는 그저 ‘놈’이라는 한 마디에서 멈추어야지 싶다. 이른바 ‘막말·비아냥’을 뱉으면 짜릿(카타르시스)하다고 여겨서 자꾸 ‘막말·비아냥’을 되풀이하는 굴레에 빠지고, 이러한 말씨는 그놈뿐 아니라 둘레 다른 사람도 물들여서 거꾸로 ‘방귀뀐 놈이 성을 내는’ 판에까지 이르러, 그만 서로 치고받는 굴레에 또 사로잡힌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놈팡이 하나 끌어내리기’에서 끝일 수 없다. 다 다른 길을 가던 사람들이 크게 하나로 뭉치더라도, 이 큰뭉치에 안 끼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 큰뭉치에 안 끼더라도 따돌리지 않을 줄 알아야 ‘민주주의’가 맞을 테지. 우리는 100으로 뭉쳐야 하지 않는다. 90이나 80이나 70으로 뭉쳐도 어마어마하다. 100으로 뭉치지 않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남’이 아닌 그저 ‘이웃’인 줄 느끼면서, 서로 헤아리는 마음을 건사할 적에, 비로소 ‘놈을 끌어내린 뒤에 세울 새나라’가 나아갈 길을 고르고 너르면서 아름답게 가꾼다고 느낀다.


  ‘반란수괴’처럼 무시무시한 말을 함부로 쓰는 무리는 조금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느낀다. 더구나 언젯적 ‘民’이라는 한자를 아직도 쓰면서 ‘들꽃’하고 먼 글을 쏟아내는가 싶기도 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 쓰던 ‘막말·비아냥’을 그놈들한테 돌려주면서 짜릿짜릿하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이는 바보이거나 또다른 속임꾼이다. ‘반란수괴’이니 ‘주범·잔당·해체’는 바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죽이려던 검은무리”가 들꽃한테 마구잡이로 흔히 쓰던 얼뜬 말이다. 이런 말을 섣불리 되쓰거나 내뱉는 이와 무리도 그놈들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뒤흔들며 망가뜨리는 새로운 굴레이지 않을까?


  뉘우치지 않는 놈한테 어떻게 ‘고운말’을 쓸 수 있느냐고 따지기 쉽다만, 잘못한 이한테 “네가 이런 잘못을 했어. 잘못한 만큼 값을 치르렴.” 하는 말을 하고 그쳐야 민주주의에 걸맞다고 느낀다. 우리는 어린이가 그릇을 깼대서 아이한테 막말이나 비아냥을 퍼붓지 않는다. 그저 잘못을 타이르거나 나무랄 뿐이다. 철없는 그놈들이 나중에 값을 치른 뒤에도 안 뉘우친다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나무랄 일이지. 그렇지만 그놈들이 값을 치른 뒤에는 손가락질을 끝낼 수 있어야 할 텐데, 벼랑에 몰린 새앙쥐를 발로 걷어차려고 하면 새앙쥐도 고양이를 문다.


  우리는 이제부터 ‘티끌과 터럭 하나 없이 정갈한 사람만’ 돌아가면서 나라지기를 맡고 나라일꾼과 벼슬아치를 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길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온누리에는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 정갈하게 일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름값이 아닌 오직 일매무새와 착한넋만 바라보면서 일을 맡길 줄 아는 나라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하고 한참 멀다는 뜻이다. ‘놈’이나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불타는 마음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를 배워야 하기에 그놈이나 그들이 자꾸 눈에 뜨일 만하다고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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