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아이랑 거닐며 (2024.2.5.)

― 서울 〈숨어있는 책〉



  큰아이랑 일산에 계신 아이들 할머니를 뵙고, 이모·이모부랑 동생을 만나고서 서울로 건너옵니다. 이모네에서 더 머물다가 움직일 수 있지만, 버스때에 빡빡하게 움직이면 으레 서울에서는 곳곳이 붐빕니다. 일찌감치 서울로 옮기는데 퍽 일찍 들어섰구나 싶고,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숨어있는 책〉에 찾아갑니다. 큰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업고서 찾아오기도 했고, 큰아이가 자라는 동안 틈틈이 찾아왔는데, 책집지기님은 벌써 열일곱 해나 지난 옛일을 떠올립니다.


  설날을 앞두고 하늘을 파랗게 씻으려는 늦겨울비가 포근하게 적시는 나날입니다.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철 따라 새롭게 찾아오는 바람과 해와 비를 마주합니다. 맑게 개면 ‘맑다’하고 ‘개다’라는 오랜 우리말을 돌아보고, 궂거나 비가 오면 ‘궂다’하고 ‘비’라는 오랜 우리말을 생각합니다. 파란하늘을 나타내는 ‘파랗다’에는 어떤 숨결이 깃들었을까요? 구름이 짙어 흐린 날씨를 알리는 ‘흐리다’에는 어떤 숨빛이 흐를까요?


  새해 첫머리에 《우리말꽃》을 써내었습니다. 이 책에 가볍게 다루기도 했는데 ‘개’라는 낱말은 ‘개다’하고 얽힙니다. ‘개나리·개오동나무’에 붙는 ‘개-’는 “작은 숲빛”을 품어요. 빨래를 개고, 반죽을 갠다는 몸짓에는 “정갈하게 빚는” 손길을 품습니다. 짐승을 가리키는 ‘개(가이·가히)’는 마땅히 이 두 가지를 아울러요.


  수수한 말씨에 수수께끼가 숨습니다. 수수께끼란 숲빛으로 반짝이는 살림결입니다. 어느 나라·겨레도 그냥 ‘말소리’만 나누지 않습니다. 말마디에 마음을 담아서 ‘숨소리’를 드러내요. 가장 쉽고 흔하다고 여길 낱말에 언제나 오늘 하루를 새롭게 가꾸는 밑거름인 말씨앗이 도사립니다. 모든 사람이 삶말로 마음씨를 일구고 살림말로 매무새를 돌볼 줄 안다면 온누리는 천천히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이제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슬쩍 골마루를 돌며 살핀 책을 주섬주섬 모읍니다. “오늘 돌아가면 언제 또 서울 와?” “일이 있으면 올 테지만 일이 없으면 2025년에 뵐는지 몰라요.” 서울마실을 올해에 새로 하더라도 다시 노고산동 언저리를 지나갈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지난날 〈숨어있는 책〉을 사흘마다 들락거릴 적에도 ‘바로 오늘이 마지막 들르는 날’이라 여기며 책을 살펴 읽었습니다. 올해이든 다음해이든 ‘새걸음이 끝걸음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 자락을 쥐고 두 자락을 쓰다듬습니다. 다만, 아무리 드문드문 들르더라도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곁에 있다고 여겨요. 아이하고 걷는 길도 혼자이든 함께이든 한꽃같이 누리는 삶입니다.


ㅅㄴㄹ


《러시아 혁명사 2》(편집부 엮음, 거름, 1990.3.22.)

- 열린글사랑. 541-4810 사회과학서적

《日本言論界와 朝鮮 1910-1945》(강동진, 지식산업사, 1987.9.25.)

《日帝言論界의 韓國觀》(강동진, 일지사, 1982.7.30.)

《말도로프의 노래》(로트레아몽/윤인선 옮김, 청하, 1987.2.25.첫/1988.6.30.4벌)

《모래 위에 쓰는 글》(남재희, 경미문화사, 1978.5.20.)

《茶山詩選》(정약용/송재소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1.12.20.)

《꼬까신》(최계락, 문학수첩, 1988.10.20.)

《사무원》(김기택, 창작과비평사, 1999.5.1.첫/2000.5.15.2벌)

《싱글》(김바다, 실천문학사, 2016.11.16.)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이재형 옮김, 책세상, 2014.12.15.)

《養兎·山羊》(채동섭, 화학사, 1967.1.10.)

《두 번째 글쓰기》(최정, 오월의봄, 2021.10.18.)

《白頭山登陟記》(안재홍, 백두산자료특별전기념·삼성출판박물관, 1931.6.30.첫/1993.10.영인)

《日本史にみる 女の愛と生き方》(永井路子, 新潮社, 1983.3.25.첫/1983.6.15.3벌)

《日本女性の生活社》(?口淸之, 講談社. 1977.4.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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