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10. 욕하는 버스
아침에 서울 성산동에서 부천 원미구청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원미동 마을책집 〈용서점〉으로 마실하는 길이다. 57분을 달리며 넘어가는데, 이동안 버스일꾼은 쉴새없이 막말(욕)을 한다. 이놈은 이렇게 끼어들고 저놈은 저렇게 안 비켜나고 그놈은 그놈이라서 끝없이 막말잔치이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노래랑 하루글을 쓰는데, 앞자리에 앉던 손님이 하나둘 뒤로 옮겨앉는다. 붓길을 쉴 적마다 버스일꾼 막말소리가 고스란히 찰떡지게 들린다. 언뜻 보아하니 다른 ‘자가용 운전자’가 하나같이 “안 비키(배려심 부족)”고 “건방지(무식운전)”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57분만 이놈 저놈 그놈을 들을 뿐이나, 버스일꾼은 하루 내내 그이 마음과 입과 몸과 눈과 귀를 막말잔지(욕퍼레이드)로 스스로 물들이는 셈이다.
마을책집 〈용서점〉에서 책을 한 꾸러미 장만한다. 등짐에만 담을 수 없어서, 어제 들른 책집에서 산 책으로 이미 넘쳐서, 책꾸러미를 하나 묶고서 가슴에 안고서 춘의역으로 걸어갔고 ‘가운마을 아닌 센트럴시티’로 전철을 타러 걷는다. 낮밥을 먹으러 가는 원미구청 공무원 여섯이 거님길을 다 차지하면서 주머니에 손 넣고서 어기적어기적 어슬렁어슬렁이어서 찻길로 내려간다. 옆을 에돌아 걷는다. 좁은 골목 왼오른은 벌써 쇳덩이로 줄줄이 잇고 앞에서 뒤에서 새로 쇳덩이가 끊이잖고 달린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뿐 아니라, 순천 부천 강릉 원주 전주 어디를 가도 “자가용 하늘나라(천국)”인 판이다. 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찰지게 막말잔치를 누리려고 온골목과 온마을을 이렇게 망가뜨렸을 수 있다.
걸으며, 전철에서, 시외버스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들숲바다를 사랑하건 안 사랑하건 《맛의 달인》을 104걸음까지 읽은 이웃은 몇이나 있을까? 온나라 해수욕장과 매립지를 통째로 바다한테 돌려줄 일인 줄, 더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발등과 종아리와 허벅지에 아랫도리를 죄다 태우는 판인데, 이를 느끼면서 불을 끄려는 이웃은 몇이나 있을까?
《싸가지 없는 진보》는 2014년에 처음 나왔다는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빠순빠돌을 멈춘 이웃은 있을까? 아마 내가 모르는 곳에 아름이웃과 사랑이웃과 꿈이웃이 있으리라 본다. 시골이웃에 숲이웃에 바다이웃도 있을 테지. 늘 아이 곁에 서면서 아이가 알아들을 쉽고 즐거운 말씨로 하루를 노래하는 이웃이 있을 테지.
나는 노래하고 춤추며 걷는 아저씨로 살아가려고 한다. 착한 아저씨 참한 아저씨 고운 아저씨 숲아저씨 시골아저씨 우리말아저씨 책아저씨 노래아저씨 꿈아저씨 걷는아저씨 사진아저씨 …… 그리고 까칠아저씨로 살림을 지으려고 한다. 고흥으로 돌아간다. 낮에는 새랑 동무하고 밤에는 별바다하고 이웃하는 우리 시골로 돌아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