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23.
숨은책 932
《뿌리깊은 나무 23호》
윤구병 엮음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1978.1.1.
예나 이제나 ‘모르는책’이 많으니, 새책집이나 헌책집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늘 ‘모르는책’을 들춥니다. 글쓴이나 펴냄터를 모를 적에 오히려 눈이 갑니다. 어디에서도 책이름을 들은 적 없을 뿐 아니라, 여태 어느 누구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 ‘모르는책’에 먼저 눈이 갑니다. 모든 ‘모르는책’은 문득 궁금해서 손을 내밀어 들출 적에는 ‘아는책’으로 바뀝니다. 누구나 알아보는 책은 아니더라도, 바로 내가 내 나름대로 알아보고 살펴서 헤아리는 ‘아는책’입니다. 《뿌리깊은 나무》도 처음에는 ‘모르는책’이었습니다. 1980년에 전두환 씨가 싹뚝 잘라내는 바람에 더 나올 수 없던 달책(월간잡지)인데요, 열여덟 살이던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인 1992년에 찾아간 헌책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 ‘훈민정음’을 배울 적에 들은 “뿌리깊은 나무”라는 말을 책이름으로 삼았네 싶어 궁금했고, 휘리릭 펼치면서 그저 놀랍고 새롭고 대단했습니다. ‘1976년에 이런 글을 실어서 냈다고? 1980년에 이미 이런 글을 싣다가 총칼에 꺾였다고?’ 하는 혼잣말을 하면서 벅찼습니다. 1999년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그만두고서 책꾼(책마을 일꾼·출판사 직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때 저를 뽑은 분이 ‘뿌리깊은 나무 엮음빛(편집장)’이던 윤구병 씨인 줄 나중에 알았고, 이녁은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으로 저를 앉히기도 했습니다. 함께 일하며 자주 말을 섞고 만나는 동안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는 대목을 새록새록 느꼈습니다. 윤구병 씨는 저한테 곧잘 “종규야, 이 책 좀 찾아줄 수 있니?” 하고 물었고, “그 책요? 헌책집을 다니면 이레도 안 되어 누구나 찾을 텐데요?” 하고 시큰둥히 대꾸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찾는다고? 난 이십 년이 넘도록 못 찾았는데?” 하시기에, “그야 선생님이 날마다 책집마실을 안 하시니 못 찾을밖에요. 헌책집에 날마다 가더라도 ‘아는책(눈에 익은 책)’이 아니라 ‘모르는책’을 모조리 끄집어서 들추면 이레가 아니라 사흘 만에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고 시큰둥히 여쭈었습니다. 1992년에도, 1999년에도, 2001년에도, 2024년에도, 저는 늘 ‘모르는책’을 살펴서 챙기고 읽으려고 합니다. 새롭게 배우면서 스스로 밝게 말하는 즐거운 마음이고 싶기에, 뿌리도 깊고 샘도 맑은 넋이고 싶기에, 푸르게 일렁이는 바람을 가만히 맞아들이는 책읽기를 누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