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00.9.25. 조선일보와 광수생각



 윗옷은 찾아봤어? 바지는? 속주머니는? 없어?

 그럼 양심은 어디 간거야?

 〈조선일보〉가 실은 ‘광수생각’ 2000.9.25.


  헌책집에 들러서 책을 보다가, 헌책집지기가 읽던 새뜸(신문)이 눈에 뜨이길래, 슥 넘긴다. ‘광수생각’이라는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린이는 “‘마누라’ 몰래 숨긴 20만 원”을 줄거리로 짠다. 그린이는 “끝내 20만 원을 찾지 못한 나머지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면서 맺는다.


  나는 굳이 ㅈㅈㄷ을 챙겨서 읽지 않으나, 눈앞에서 누가 읽으면 ‘이분은 뭘 읽으려나?’ 하고 갸웃하면서 같이 들여다보곤 한다. 엊그제 2000년 9월 23일치 〈조선일보〉 ‘광수생각’에서는, 그린이가 “저는 언제쯤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될까요?” 하고 묻더라. 그린이는 “마을 어귀에서 자라는 나무는 어디로도 갈 수 없기에 예전에는 안되어 보였지만, 이제는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나무가 부럽다”고 줄거리를 짠다.


  글쟁이는 왜 ㅈㅈㄷ 같은 데에 꼭지를 얻어서 글을 실으려 할까? 그림쟁이는 뭣 하러 ㅈㅈㄷ 같은 곳에 자리를 받아서 그림을 띄우려 할까? 글삯도 그림삯도 가장 높이 준다는 〈조선일보〉이니까,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리고 글힘·그림힘을 쥐락펴락하고 싶으니 이런 데에 글그림을 실을 수 있겠지.


  2000년은 ‘조선일보 80돌’이라고 하더라. 그들은 80돌이라는 발자국을 매우 자랑스럽게 외치는데, 코앞인 전두환·노태우 무렵에 무슨 짓을 했는지 뉘우치는 빛이 없고, 조금 앞서인 이승만·박정희 무렵에 어떤 짓을 했는지 돌아보는 빛이 없고, 꽤 앞서인 일제강점기에 어떤 허수아비 노릇을 했는지 되새기는 빛이 없다. 그러니까, 신문기자도 글쟁이도 그림쟁이도 한통속이다. 오늘을 볼 줄 모르니, 어제를 감추거나 덧씌울 뿐 아니라, 모레에도 거짓말과 눈속임으로 채우는 굴레에 스스로 갇힌다.


  삶길(삶이라는 깊이)을 알고 싶다면, 스스로 똑바로 들여다보면 된다. 살림길(삶을 짓는 길)을 배우고 싶다면, 허튼짓을 하면서 온나라를 뒤흔들고 망가뜨리는 무리에 슬그머니 올라타면서 돈·이름·힘을 얻어먹는 바보짓을 그만두거나 아예 처음부터 안 하면 된다.


  함께살기를 하는 짝꿍 몰래 돈을 숨기는 마음이란 얼마나 가엾은가. 사랑이 없으니 돈에 얽매인다. 풀꽃나무가 어떤 마음인지 마주하지 못하는 매무새는 얼마나 딱한가. 풀꽃나무가 들려주는 말에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 나무를 쳐다보면서 ‘안되어’ 보인다고 말하다가 ‘부럽다’고까지 말하고야 만다.


  모든 새는 왼날개랑 오른날개를 함께 펄럭이면서 하늘빛을 머금는다. 모든 나비는 왼날개랑 오른날개를 나란히 팔랑이면서 꽃가루받이를 베푼다. 모든 사람은 왼오른손과 왼오른발을 같이 움직이면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편다. 그렇다면 보자. ㅈㅈㄷ은 ‘오른자리’에 선 적이 있는가? 아니다. ㅈㅈㄷ은 ‘오른자리’가 아닌 ‘돈자리·이름자리·힘자리’에만 서려 하면서 ‘우두머리 밑핥기’를 해댔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오른글(우익·우파)’을 오른글답게 참답고 슬기롭게 여미는 글바치가 거의 안 보인다. 그리고 ‘왼글(좌익·좌파)’을 왼글답게 참하고 어질게 엮는 글바치도 도무지 안 보인다. 또한 ‘가운글(중도)’을 가운글답게 착하고 곱게 여는 글바치도 참으로 안 보인다. ‘왼가오(왼쪽·가운쪽·오른쪽)’가 다 안 보인다.


  헌책집 귀퉁이에 널브러진 새뜸을 들추다가 내려놓는다. 아니, 오늘 이 헌책집에서 장만한 책을 끈으로 묶을 적에 받침종이로 삼는다. 서울 독립문 헌책집 〈골목책방〉 지기는 이녁이 조금 앞서까지 읽던 이 신문종이를 받침으로 삼아서 척척 묶어 준다. ‘참마음(양심)’을 스스로 일찌감치 잊다가 잃은 채 〈조선일보〉에 ‘눈가림 그림’을 신나게 싣는 ‘광수생각’도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다. 이렇게 책꾸러미 받침이 되어 준다. 이따가 집으로 돌아가면, 국수나 한 그릇 삶아서 국수를 삶은 작은솥을 받칠 적에 쏠쏠히 쓸 만하다.


  앞으로 스무 해가 지난 2020년에 이르면 ‘조선일보 100돌’일 텐데, 이들은 100돌(온돌)쯤 맞이할 무렵에는 “우리 잘못과 바보짓을 무릎 꿇고 빕니다!” 하면서 눈물을 흘릴까? 아니면 ‘숨긴돈(비상금·비자금)’을 잃어버려서 아까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광수생각’마냥 “너희는 왜 나(조선일보)한테만 화살을 쏘니? 예전에 친일부역과 독재부역을 나(조선일보) 혼자 했니? 친일부역과 독재부역을 한 다른 놈들한테는 화살을 안 쏴?” 하고 푸념을 할까? 뉘우칠 줄 모르는 곳에 글자리나 그림자리를 얻어서 어영부영 ‘좋은말’ 시늉을 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스스로 뭐가 부끄럽거나 창피한 줄 모르리라. 앞으로 스무 해가 흘러 2020년을 맞이해도 부끄럼이나 창피가 아닌 ‘자랑’으로 여길는지 모른다. “난 조선일보에 만화를 연재한 사람이라구!” 하고 콧방귀를 뀔 듯싶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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