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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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까칠읽기 40


《날씨와 얼굴》

 이슬아

 위고

 2023.2.20.



  아는 사람이 너무 없더라. 이 나라에서는 어떤 풀과 나무도 제 목숨대로 못 산다. 과일밭에서 피눈물이며 피고름을 짜내어서 사람한테 열매를 바치는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나 복숭아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짓밟히고 괴로운지 눈여겨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너무 어렵다. 이 나라 과일밭에서는 과일나무가 고작 열 해를 살 동 말 동하는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무는 즈믄해(1000년)쯤 거뜬히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우리나라 과일밭에서는 고작 열 해를 살까 말까 아슬아슬하다면, 과일밭에서 무슨 짓을 한다는 뜻일까? 쇠줄(철사)로 줄기랑 가지를 잡아당겨서 바닥에 박거나 동여맨다. 하나같이 짜리몽땅한 과일나무로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내라고 들볶으면서, 거름이 아닌 죽음재(화학비료)를 뿌리고, 풀죽임물(농약)까지 끝없이 뿌려대는 판이라, 나무가 열 해나 살아남는다는 대목이 오히려 놀랍다고 할 만하다.


  더구나 적잖은 과일밭은 아예 비닐이나 유리로 덮어씌운다. 새가 쫄 수 없게 가린다는데,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갇혀서 쇠사슬과 쇠줄에 묶인 나무는 해도 바람도 비도 없이 피눈물과 피고름을 짜낼 뿐이다.


  닭과 돼지와 소만 좁은 가두리에서 시달리다가 끔찍하게 죽지 않는다. 모든 과일도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과일뿐인가?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콩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나라 논밭은 ‘씨바꿈(품종개량·유전자조작)’을 해댄 낟알인 터라, 그저 낟알만 굵고 잔뜩 내놓도록 시달린다. 이뿐인가? 논도 밭도 끝없이 뿌려대는 풀죽임물과 죽음재 탓에 시들시들하다. 더구나 ‘흙’조차 없는 ‘스마트팜’에서 해바람비마저 없이 억지로 몸뚱이만 키우고 반들반들 푸릇푸릇 ‘남새 흉내’를 내야 하기까지 한다.


  더 들여다보자. 해를 못 쬐고서 전깃불빛을 받아야 하는 스마트팜에서 거두는 풀(채소)이 사람한테 이바지하겠는가? 더구나 샘물도 냇물도 빗물도 아닌 꼭짓물(수돗물)을 머금어야 하는 풀과 낟알과 열매인데, 풀꽃나무한테는 들볶음질(고문)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크고 튼튼하지!” 같은 말도 엉터리이지만, “풀밥(채식·비건)이 좋고 고기밥(육식)은 나쁘다!” 같은 말도 뜬금없다. 사람이 고기로 삼는 짐승은 ‘풀’을 즐긴다. 사람은 ‘고기 먹는 짐승’은 안 먹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왜 고양이를 고기로 안 삼았겠는가? 고양이는 오직 고기짐승인 탓이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개’는 ‘고기’가 아닌 ‘된장국에 만 밥’을 사람하고 나란히 먹으면서 살았다. 예부터 ‘고기로 삼는 돼지’도 ‘고깃기운’이 없는 밥을 사람하고 똑같이 누렸다.


  《날씨와 얼굴》은 경향신문에 실은 글을 모았다고 한다. 애써서 쓴 글이라고는 느끼지만, 풀도 꽃도 나무도, 뭇짐승과 뭇숨결도, 또 벌레와 새도, 해와 바람과 비와 흙도, 거의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안 들여다본 채, 목소리만 외곬로 높인다고 느낀다.


  풀을 먹기를 바란다면서 왜 ‘풀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한자말 ‘채식’조차도 쓰기 싫어서 ‘비건’을 써야 할까? 그런데 왜 억지스런 한자말 ‘모부(母父)’에 매달리는가?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잘 알아야 한다.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다. 그러면 한자는 중국말이나 일본말인가? 아니다. 한자는 ‘그놈말(권력자 언어)’이다. 한자는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우두머리와 벼슬아치와 나리(양반)라고 일컫는 무리가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쥐어짠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일 뿐이다.


  “우리말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제대로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쓸 말이 아니”라는 뜻이고, “우리하고 동떨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는 ‘우리’가 쓸 말이 아니고, 서로서로 사랑으로 만나서 보금자리를 이룰 ‘우리’가 쓸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놈말·힘말(권력용어)·싸움말(전쟁용어)’인 한자로 적을 적에는 ‘부모(父母)’처럼 ‘아버지 + 어머니’일 텐데, 사이좋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수수한 순이돌이가 주고받던 말로는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엄빠(엄마아빠)’처럼 언제나 엄마를 앞에 놓는다. 우리는 ‘어버이·어버이날’처럼 언제나 어머니(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 ‘가시버시’도 순이(여성)를 앞세운다.


  무엇을 먹든 대수롭지는 않다. 어떤 눈길과 마음과 삶으로 먹느냐가 대수롭다. 풀밥은 먹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이 없이 미움(혐오)만 가득하다면, 게다가 이 나라 흙길(농업)이 풀꽃나무를 마구 괴롭히고 짓밟으면서 피눈물을 짜내는 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온풀밥이건 아름풀밥이건 허울스러울 뿐이다.


  글쓰기를 하려면 우리말부터 익힐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래도록 ‘엄마누리(모계사회)’였고, 이 엄마누리를 깬 ‘그놈들(권력자)’이 말도 글도 마음도 삶터도 마을도 망가뜨리면서 굴레를 씌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놈들’에서 ‘그놈’은 ‘돌이(남성)’만 있지 않다. 힘을 거머쥐려는 무리가 그저 모두 ‘그놈’일 뿐이다.


  수수한 ‘풀’이라는 낱말이 왜 ‘풀’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낱말이 왜 ‘나무’와 ‘숲’인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니 휩쓸리고, 생각을 안 하니 서로 미워하며, 생각을 접으니 그만 외곬에 사로잡힌다.


  이 나라가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모든 민낯을 볼 노릇이다. 고기밥을 놓고서 여러모로 넘치는 굴레를 짚으려 한다면, 풀밥을 놓고도 온갖 수렁이 가득한 줄 나란히 짚으면서, 모든 굴레와 수렁을 싹 걷어낼 노릇이다.


  옳거나 바르다고 여길 길만 바라보지 말자. 아름길과 사랑길과 살림길과 숲길을 바라보자. 무엇보다도 이제는 좀 서울에서 떠나자. 서울에서 맴돌며 쳇바퀴를 돌기 때문에 글결에도 말결에도 ‘서울힘(서울권력)’이 너무나도 넘친다. 부디 우리 스스로 전라도 시골로 삶터를 옮기고, 경상도 시골로 삶자리를 옮기자. 경상도가 꼴통이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경상도 시골로 씩씩하게 삶자리를 옮겨서, 경상도 시골을 새롭게 일구자. 전라도가 꼰대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전라도 시골로 즐겁게 삶터를 옮겨서, 전라도 시골을 새롭게 가꾸자.


  서울에 깃들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면서 목소리만 내는 글은 덧없다. 오늘날 이 나라 구석구석이 어떻게 찌들고 물들고 앓는지를 지켜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쓰레질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서 글만 쓰려고 한다면, 새로 자라나고 태어날 아이들한테 참말로 창피한 일이다.


ㅅㄴㄹ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휘몰아치는 벼락날씨를 겪어야 한다

→ 얼굴이 있는 우리는 모두 몰아치는 막날씨를 받아들여야 한다

7쪽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의 얼굴 또한 마주할 것이다

→ 사람뿐 아니라 사람 아닌 이웃얼굴도 마주한다

→ 사람얼굴과 짐승얼굴도 마주한다

7쪽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 때문에, 이 책은 쓰여졌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 때문에 이 책을 썼다

→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 있어서 이 책을 쓴다

7쪽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 틀림없이 어떤 얼굴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 참말로 어떤 얼굴은 잘 다루지 않는다

7쪽


나는 비밀 병기를 장전해주는 심정으로 미래 세대와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

→ 나는 속힘을 채워 주는 마음으로 아이들하고 글쓰기를 익힌다

→ 나는 속빛을 챙겨 주려고 푸름이하고 글쓰기 자리를 연다

13쪽


나에게 비거니즘은 어떤 착취에 더 이상 일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동물과 인간이 관계 맺어온 방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다

→ 나는 온풀밥을 다짐하며 더는 어떻게도 빼앗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길을 바꾸고 싶다

→ 나는 온풀살이를 하며 더는 아무것도 들볶지 않으면서, 짐승과 사람이 맺은 얼거리를 고치고 싶다

16쪽


고기 먹기를 일단 멈춘 동지로서 당신을 기다리겠다

→ 고기를 이제 그만 먹는 그대를 기다린다

→ 아무튼 고기를 멈춘 이웃인 그대를 기다린다

19쪽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꼭 서로한테서 배울 수 있다

→ 우리는 늘 서로 가르칠 수 있다

19쪽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 돼지 하나. 소 하나. 닭 하나

→ 돼지. 소. 닭

43쪽


‘모부’라는 단어에도 힘을 싣고 싶다

→ ‘어버이’라는 말을 힘껏 쓰고 싶다

→ ‘엄빠’라는 낱말을 힘차게 쓰고 싶다

45쪽


누군가의 목숨을 나란히 생각할 때 우리가 쓰는 말도 새로워진다

→ 이웃 목숨을 나란히 살피면 우리가 쓰는 말도 다르다

→ 이웃을 나란히 헤아리면 우리가 쓰는 말부터 바꾼다

46쪽


내일이 올 것임을 안다

→ 다음날은 온다

→ 새날이 올 줄 안다

→ 새 하루가 온다

63쪽


열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대에 맞게 변주하고 전개했다

→ 열 가지 이야기를 오늘날에 맞게 추스르고 들려준다

→ 열 갈래 이야기를 요즈음에 맞게 가다듬고 내놓는다

77쪽


‘기다린다’라는 동사를 빼고 그의 도서 일대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움씨를 빼고서 그이 책삶을 말할 수 있을까

→ ‘기다린다’라는 말을 빼고서 그이 책읽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93쪽


생애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다양한 자리에 서게 한다

→ 우리는 삶에 따라 이토록 온갖 자리에 선다

→ 우리는 발걸음에 따라 이토록 여러 자리에 선다

116쪽


우리는 모두 어떤 사회적 신분 안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자리에 있다

→ 우리는 모두 어떤 높낮이에 선다

116쪽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위급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기 혹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품종개량되고 사육되고 좁은 축사 안에 갇혀 살다가 도살된다. 어떤 소도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한다

→ 이 땅에서 모든 소는 아슬판이다. 고기나 소젖을 내놓아야 하기에 씨를 바꾸고,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어떤 소도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한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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