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 내가 안 쓰는 말. 중립 2023.7.29.



우리가 사는 별이

동글동글 공이라면

꿈도 구석도 기스락도

처음도 뒤도 밑도 없어


우리가 있는 별이

복판이나 귀퉁이가 없으면

모든 곳이 나란하면서

복판에 가운데에 삶터야


모나지 않는 사람은

둥그렇게 두레로 만나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동무에 이웃인 너나들이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겠니?

맞거나 틀리다고 싸우겠니?

숲을 이루는 나무처럼

사랑으로 푸르게 선다


ㅅㄴㄹ


우리말 ‘가’는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가’는 ‘가다’를 이루는 밑동인데, ‘가장자리’를 나타내기도 하면서 ‘가장’을 나타내는 밑동이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가운데’를 나타내는 밑동이에요. 둥그런 우리 별로 본다면, 어느 곳을 콕 짚어서 “여기는 가장자리야!” 하고 말하더라도 슥 옆으로 돌아보면 어느새 ‘가운데’로 여길 만합니다. 얼핏 가운데 같아 보이는 자리도 가장자리로 삼을 수 있어요. 한자말 ‘중립(中立)’은 “가운데 서다”를 뜻합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하는 ‘가운데’일 텐데, 별공(지구본)을 스르르 돌리면 “가운데도 가운데 아닐” 수 있어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쪽이든 자칫 다투거나 싸우는 빌미로 불거지기 쉽습니다. 누가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기 앞서, 서로 무엇을 하려는지 이야기를 듣고 들려줄 노릇입니다. “선 자리”에 따라서 ‘나’하고 ‘너’로 다릅니다. 누가 옳거나 그른 자리가 아닌 ‘이쪽’하고 ‘저쪽’인 자리일 뿐이에요. “쟤가 나쁜데!” 하는 마음은 으레 “동무를 나쁘게 보는 마음”을 스스로 심는 셈입니다. 참답게 서는 가운데란, 어느 쪽을 고르는 길이 아닌, 숲을 이루는 나무처럼 사랑으로 푸르게 서는 길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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