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꽃그림 서문문고 321
노숙자 지음 / 서문당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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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20.

인문책시렁 362


《한국의 꽃그림》

 노숙자

 서문당

 2000.10.20.



  큰아이를 낳은 2008년부터 으레 꽃마실을 다녔습니다. 그무렵에는 인천에서 지냈고, 우리 집에 따로 꽃그릇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하늘채(옥탑방)를 나와서 몇 걸음만 디디면 골목 어디나 꽃밭이에요. 아이를 안고 업고 걸리면서 이웃마을 꽃골목을 거닐었어요. 아이는 늘 풀꽃나무를 지켜보고 벌나비와 새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모습을 척척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전남 고흥으로 옮긴 뒤에는 그저 마당에서 꽃잔치입니다. 따로 안 심어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랍니다. 언제나 새가 심거든요. 질경이나 차조기나 들깨는 씨앗을 조금 얻어서 곳곳에 뿌렸습니다. 여러 풀이 한결 즐거이 어울리기를 바라거든요.


  《한국의 꽃그림》(노숙자, 서문당, 2000)은 곁꽃(반려식물)으로 삼는 풀꽃도 담은 그림이 있되, 사람들이 굳이 곁꽃으로 안 삼지만, 늘 우리 곁에서 푸르고 맑고 밝게 피고 지는 숱한 꽃빛을 담은 그림이 나란합니다.


  예부터 꽃과 나무는 돈으로 사고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숲에서 씨앗을 얻거나 어린나무를 캐서 마당 한켠에 심을 뿐입니다. 때로는 새가 포르르 날아와서 씨앗을 심습니다. 때로는 개미가 풀씨나 나무씨를 나르다가 떨구어서 심습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빛나는 풀씨에 나무씨입니다. 우리가 곁에 새를 이웃으로 맞이한다면, 우리 삶터는 늘 꽃잔치에 나무마당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기에 누구나 숨을 쉽니다. 풀이 사라지고 나무가 꺾이는 곳에서는 매캐하고 흐리멍덩하고 어지러울 뿐입니다.


  곁에 풀꽃나무를 놓으면서 이따금 풀그림과 꽃그림과 나무그림을 손수 그려 본다면, 온누리는 어느새 환하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ㅅㄴㄹ


김치 가운데 열무김치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항상 텃밭에 상추 다음으로 열무를 심는다. 열무는 심으면 곧장 장다리가 올라오고 흰색이 감도는 보라빛 꽃을 터뜨린다. 흐드러지게 피어나 쓰러질 듯하면서도 자꾸만 꽃을 피운다. 유난히도 흰나비를 부르는 꽃을 피운다. (무꽃/34쪽)


언제 보아도 다정하고 따뜻하다. 귀한 것이 아니라서 쉽게 지나치게 되지만 이런 꽃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남다르다. (제비꽃/60쪽)


상추와 같이 먹으려고 심었더니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쑥갓꽃/63쪽)


어릴 적 시골에서 본 적이 있는 목화꽃을 그려 보고 싶었다. 수소문한 끝에 용인 민속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목화에서는 면화도 얻고 씨로는 기름도 짜는데, 햇빛을 보아야 꽃이 피고 해가 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다. 요긴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햇살이던가. (목화꽃/125쪽)


시골로 피난 갔던 어린 시절, 조그마한 밭에 파랗게 자라 있는 풀을 칼로 베고 다시 며칠 후 가 보면 또다시 자라나 있던 것이 생각난다. 내게는 아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며 그때를 떠올리며 손바닥만한 부추밭을 만들고는 아까워서 베지 않았다. 어느 날 여섯 잎으로 된 하얀 꽃이 피었다. (부추꽃/16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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