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09


《새마을 총서 : 생활과학》

 과학기술처 엮음

 한국과학기술진행재단·마을문고본부

 1981.6.15.



  어릴 적을 돌아보면, 우리 어머니는 따로 책을 읽을 틈이 없는 나날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갖은 일과 살림을 맡아야 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나 할머니도 매한가지입니다. 흔히 ‘집순이(가정주부)’로 여깁니다만, 집을 지키고 돌보고 가꾸려고 어마어마하게 땀을 쏟습니다. 우리네 아버지가 ‘집돌이’로 지내는 삶이라면, ‘육아지옥’이나 ‘가사분담’이란 말이 없었을 만하다고 느껴요. 아이를 함께 낳고 같이 돌보고 나란히 가르치는 길이라면 보금자리에 사랑이 피어나거든요. 집안일을 이리저리 가르지 말고 아버지를 비롯한 사내들이 스스럼없이 맡을 적에는 새롭게 깨닫는 손길과 눈빛이 자라게 마련입니다. 저는 어머니 심부름을 끝없이 했고, 집안일을 언제나 거들었는데, 나중에 어버이란 자리에 서서 두 아이를 돌보는 길에 “어릴 적 심부름과 집안일 함께하기”가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 새삼스레 느꼈어요. 《새마을 총서 : 생활과학》을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 자주 구경했습니다. 《생활과학》을 닮은 책은 지난날 ‘여성잡지 별책부록’으로 곧잘 나오기도 했습니다. 《생활과학》 같은 곁책(별책부록)이 나오는 달이면 ‘여성잡지 사오는 심부름’을 하러 마을책집으로 달려가서 줄을 섰습니다.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 아주머니도 이런 책을 얻으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1980년대에는 몰랐는데, 이 책에 담은 줄거리나 그림이나 사진은 거의 다 일본책을 베끼거나 훔쳤더군요. 나중에 헌책집에서 ‘일본에서 나온 생활과학’ 책을 하나둘 찾아보고서 알아챘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루를 살아내면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손길로 가다듬고서 가꾸는 우리 살림글을 여밀 만할 텐데, 왜 굳이 일본책을 슬쩍 베끼려 했을까요? 더 잘하거나 잘난 살림은 없다고 느껴요. 작고 수수하고 흔헌 곳에 참하면서 곱고 흐드러지는 샘물처럼 빛나는 살림꽃이 피어난다고 봅니다.


- 이 총서는 정부 보조로 제작하여 전국 마을문고에 무상 기증하고 있는 비매품(非賣品)입니다.

- 마을문고 회원이 희망할 때는 본회 자금으로 제작한 재판본을 반포실비(권당 300원, 우송료 포함)만으로 배본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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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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