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4.26. 쓰는 손은 하나여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꿈은 문득 그려서 품습니다. 몸을 잊고서 마음을 읽는 어느 때에 가만히 씨앗을 스스로 빚어서 온넋으로 바라볼 적에 꿈이 깨어나서 천천히 싹틉니다. 오늘 하는 숱한 놀이나 일이나 살림은, 모두 누구나 예전에 스스로 그린 꿈씨입니다. 잘하거나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겪으면서 배우는 일입니다. 훌륭하거나 못난 일이 아닙니다. 맞아들여서 생각하고 살피면서 배우는 일입니다.


  넉벌손질(4교)을 하는 《말밑 꾸러미》입니다. ‘우리말 어원사전’을 손수 쓰고 여밀 수 있으리라고는 어림조차 못 했지만, 꿈씨는 진작에 심었습니다. 1992년에 《민중서관 이희승 콘사이스 국어사전》을 두 벌째 다 읽고서 “이 따위로 엮는 엉터리가 우리나라 국어사전이라면, 내 손으로 제대로 엮고 말겠어.”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책상을 쾅 내리쳤습니다. 한창 ‘자율학습’이라면서 잿집(시멘트 덩어리 교실)에 갇힌 어느 날 저녁 아홉 시 무렵이었어요.


  그런데 이 꿈씨는 이날 바로 잊었습니다. 심기는 했되 잊었지요. 이태 뒤인 1994년에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고, 네덜란드말을 익혀서 옮김빛(통·번역)이라는 길을 가려 했지만, 네덜란드 낱말책조차 없는 곳이 ‘대학교’라는 허울뿐인 줄 느끼고서, 이 따위 대학교도 그만두어야겠구나 싶었고, 이듬해에 바로 싸움터(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돈·이름·힘이 없는 여린 사내는 어쩔 길 없이 언제라도 끌려가야 한다면, 제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여겼어요.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구르면서, ‘군의문사’와 ‘군대폭력’과 ‘군납비리’를 뼛골로 지켜보았고, 다시 대학교에서 열두 달을 보내면서 ‘운동권 문제’를 곁에서 보고는 너무 신물났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날마다 몇 군데 헌책집으로 책읽기를 다녔어요. 주머니에 오천 원을 넣고서, “오천 원어치 책”을 날마다 사되, 돈이 안 되어 못 사는 책은 서서읽기를 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앉은 적이 없습니다. 책값을 치르지도 못 하면서 앉을 수 없다고 여겼고, 얼른 서서읽기로 하나를 끝내야 다음 책을 읽을 수 있거든요.


  이무렵에 혼자 ‘사전짓기’를 익혀 가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는 우리말을 다루는 어원사전도 없지? 국어학자란 놈들은 다 뭐 하나?” 싶었어요. 고등학생 때처럼 새삼스레 “그러면 내가 써야 할까? 그런데 그냥 국어사전도 아닌 어원사전은 어떻게 써야 하지?” 하고 마음에 대고서 물었습니다.


  정부·대학교·연구소에 깃들지 않은 채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면, 더더구나 낱말책을 묶자면, 밥벌이를 할 길이 까마득합니다. 이런 살림길이라서 다른 곁일을 끝없이 하는데, 곁일로도 버거운 살림은 으레 언니가 도왔고, 여러 책숲이웃(도서관 후원자)이 함께 도왔습니다.


  읽고 쓰고 새겨서, 새롭게 여미고 가다듬어서 쓰는, 이러한 낱말책짓기(사전편찬)는 한 사람이 하되, 어느 한 사람이 낱말책짓기를 하도록 돕는 숱한 사람들 마음과 손길과 숨결이 있기에, 그리고 곁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살림노래를 부르기에, 게다가 시골에서 숲빛을 늘 머금으면서 새한테서 배우고 풀꽃나무한테서 배우고 바람한테서 배우고 바다랑 하늘이랑 흙한테서 배우니, ‘쓰는 손은 하나’이되, ‘쓰는 손을 돕는 숨결은 온·즈믄·골·잘’입니다.


  셈틀로만 넉벌손질을 하다가 벅차서 펴냄터에 종이로 뽑아 주십사 하고 여쭈었습니다. 펴냄터에서는 아예 미리책(가제본)으로 꾸며서 보내줍니다. 고맙게 흐르는 마음과 손길과 이바지를 기쁘게 맞이합니다. 큰아이는 “내 통장에서 100만 원쯤 뽑아 줄까요?” 하고 묻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안 받겠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30만 원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살림돈뿐 아니라, 고흥교육청에 ‘폐교 사용료’를 목돈으로 치러야 하기에, 푼푼이 이 돈 저 돈 한창 모읍니다. 아무튼, 마무리를 짓고, 고흥교육청에 목돈을 치르고, 기지개를 켤 즈음에, ‘우리말 어원사전’을 만나려나 하고 헤아리는 봄날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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