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작은걸음 (2023.6.16.)

― 인천 〈아벨서점〉



  ‘도서관’은 일본말입니다. 우리 삶터에 흐르는 말은 모름지기 모두 우리 살림살이를 그리는 낱말이었고, 중국을 섬기던 조선이었어도 사람들 말살림은 수수하게 시골말이었으나,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서 이 땅을 한참 집어삼킨 뒤부터는 온통 일본말이 잡아먹었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지 여든 해 가까워도 일본말·일본말씨·일본 한자말을 못 걷어내었다면, “안 걷어냈다”고 해야 맞지 싶습니다. 조선 오백 해에는 중국말·중국말씨·중국 한자말이 글힘(언어권력)이었다면, 총칼수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일본말이 글힘인 셈입니다.


  일본말 ‘도서관’을 바꿀 뿐 아니라, 이름 그대로 온누리가 푸르기를 바라는 뜻으로 ‘책숲’이라는 낱말을 지어 보았습니다. 책으로 숲을 이루고, 숲을 책에 담아서, 마음과 말에 푸른말이 너울거리기를 바라요. 책을 빌려서 읽는 곳도 책숲이고, 책을 사고파는 집인 책집도 책숲입니다. 우리 살림집도 책숲입니다. 어느 곳이나 숲입니다. 살림집은 보금자리이니 보금숲이면서 보금책숲입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책터이면서 책마을숲입니다.


  우리는 책집마실을 하는 길에 책집에 있는 모든 책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이 책을 기웃하고 저 책을 들추다가 한둘이나 서넛이나 여럿을 품습니다. 한꾸러미를 장만하더라도 책시렁은 그리 비지 않습니다. 사들이는 책보다 ‘서서읽기’로 누리는 책이 훨씬 많다고 할 책집마실입니다. 서서읽기를 즐기다가 ‘두고읽기’로 이으려는 책을 골라서 장만합니다.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에 깃들었다면, ‘아벨책숲’을 한껏 누리는 작은걸음으로 차근차근 책빛을 누리다가 이야기를 품는다는 뜻입니다. 돌고도는 책이 우리 집에 머물면서 우리 마음을 북돋우기를 바라는 길입니다.


  책집은 “책으로 거듭난 숲”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온마음으로 헤아리는 자리입니다. “삶에서 책이 모두”인 하루가 아닌, “삶에 책을 곁에 놓는” 하루를 펴는 마당입니다. 책집이나 책숲은 ‘문화공간’도 ‘복합문화공간’도 아닙니다. 책으로 일구는 집이요, 책으로 가꾸는 숲입니다.


  책이란, 고요를 깨고서 새롭게 아늑할 자리를 짓는 작은걸음입니다. 책집이란, 숨길을 트고서 문득 일어설 자리를 여는 작은씨앗입니다. 책숲이란, 생각을 담아서 신나게 뛰놀 들판으로 나아가는 작은몸짓입니다. 마음을 채우고, 꿈을 챙기면서, 이야기를 차곡차곡 건사하는, 착한 넋으로 책을 손에 쥡니다.


ㅅㄴㄹ


《중국의 ‘자유’ 전통》(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표정훈 옮김, 이산, 1998.4.24.첫/2004.7.16.2벌)

《淸貧의 思想》(나카노 고지/서석연 옮김, 자유문화사, 1993.5.15.)

《풍미風味》(김구용, 솔, 2001.5.30.)

《베이컨 隨筆集》(베이컨/최혁순 옮김, 집문당, 1977.4.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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