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4.2.28.

오늘말. 사그랑이


떠나는 겨울은 가만히 사그라듭니다. 고이 잠들어 주기에 이다음으로 건너갑니다. 새로 오는 봄은 찬바람을 잠재웁니다. 부드럽게 삭히고, 차근차근 달랩니다. 가으내 시든 풀줄기는 겨우내 빛을 잃으면서 죽어간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러나 수그러든 풀포기일 뿐, 후줄근하거나 해진 모습은 아닙니다. 온땅을 폭 덮고서 몽그라진 듯한데, 차갑게 얼어붙는 땅에 한 겹 이불과 같습니다. 풀벌레와 지렁이와 개구리가 느긋이 쉴 수 있습니다. 겨울하고 봄 사이에는 가랑잎이 바스락바스락 부서집니다. 이러면서 잎망울이 부풀고, 이윽고 새잎이 돋아요. 어느덧 다시 푸르게 물결치면서 한 걸음 성큼 내딛는 숲빛이에요. 사그랑이 가랑잎은 까무잡잡 새흙으로 거듭납니다. 거미가 깨어나 집을 짓습니다. 일찍 깨어나서 나풀대는 나비가 있습니다. 겨울오리는 저마다 무리를 지어 이 땅을 떠나려고 하늘을 가릅니다. 옹크리며 겨울을 난 작은 멧새는 부산하게 날아다니면서 해바라기를 하고요. 모두 지나갑니다. 다들 건너갑니다. 나이가 들어 낡는다거나 쪼글쪼글 슬어서 허름하다기보다는, 그저 해를 머금으면서 손때를 타는 길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곰삭다·곰삭히다·삭다·삭히다·오래되다·낡다·낡삭다·너덜너덜·나달나달·나이들다·나이가 들다·나이많다·너절하다·닳다·해지다·해어지다·허접하다·허름하다·후줄근하다·후지다·뒤처지다·나가다·죽다·죽어가다·뭉그러지다·몽그라지다·뭉크러지다·빛깔없다·빛없다·한물가다·쪼글쪼글·쭈글쭈글·쪼그라들다·쪼그리다·시들다·사그라들다·사그랑이·수그러들다·슬다·손때·주름살·주저리·주접 ← 노화(老化)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