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전광판 2023.12.29.쇠.



반딧불이는 밤에 또렷하게 볼 텐데, 낮에도 반딧불이는 반딧불이란다. 별빛은 한밤에 반짝반짝 볼 텐데, 낮에 알아보지 않더라도 별은 늘 별이란다. 밤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새가 있지만, 불을 밝히거나 쏘지 않아. 개구리는 낮에도 놀지만, 밤이 깊어도 모여들어서 신나게 노래해. 고양이는 낮에도 돌아다니지만, 밤에도 사뿐히 걸어다녀. 낮은 햇빛으로 살아가고, 밤은 별빛으로 살아가며 꿈을 바라본단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낮과 밤을 잊었어. 낮에 해를 바라보는 자리에 있지 않더니, 밤에 별을 헤아리지 않더구나. 낮에 햇빛이 드리우는 들숲바다를 품지 않더니, 밤에 별빛잔치를 누리지 않네. 사람들은 밤에 몸을 쉬면서 스스로 넋빛을 돌아보는 때를 보내기보다는, ‘전광판(전기로 밝히는 알림판)’을 잔뜩 세우면서 넋을 잊고 얼을 잃네. 왜 밤에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곳을 드나들거나 오가야 할까? 왜 낮에 하고서 쉬어야 할 일놀이를 밤늦게 붙잡을까? 얼마나 바빠야 하니? 얼마나 스스로 넋을 등져야 하니? 얼마나 몰아쳐야 하니? 얼마나 제빛(스스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넋빛)을 잊은 채 허깨비가 되어 떠돌아야 하니? 전광판이 비추는 곳에 모여들어 우글거리는 사람들과 하루살이는 무엇이 다를까? 한살림을 잊는 마음이라서 하루살이로 스스로 몰아세우지 않니? 네가 네 넋을 늘 바라보아야 삶이야. 남들이 세우는 전광판에 휩쓸리면서 너희 빛씨앗을 갉지 않기를 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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