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창비시선 78
이은봉 지음 / 창비 / 1989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2.3.

노래책시렁 286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은봉

 창작과비평사

 1989.9.15.



  시골에서 나고자라되 나락꽃을 모르는 어린이·푸름이가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스무 살을 넘기거나 서른 살이 되어도 나락꽃뿐 아니라 나락들을 모릅니다. 봄들하고 여름들이 얼마나 다른지, ‘사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림조차 못 합니다. ‘씨나락’은 ‘씨 + 나락’입니다. “이듬해에 심을 씨로 삼는 나락”인 씨나락입니다. 겨울하고 봄에 굶더라도 씨나락은 안 건드리지요.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터무니없는 소리”를 가리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면서 다 죽자는 멍청한 소리라는 뜻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은 지 한참 됩니다. 네철을 책이름으로 삼는데 무슨 철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길이 없어서 꽤 오래 책시렁에 얹었다가 치웠습니다.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림을 하다가 시골버스로 읍내에만 나가더라도 시골버스가 시끄럽고, 시골 아이들이 막말에 거친말이 춤춥니다. 큰고장이나 서울에 이따금 마실하면 하늘을 볼 틈이 없고, 쇳덩이(자동차)를 비껴 걷느라 온몸이 뻐근합니다. 어느덧 아이어른 몽땅 철을 잊고 잃고 등진 나라입니다. 철없는 나라를 이룬 철없는 사람은 철빛이 흐르는 글을 언제쯤 쓸 수 있을까요? 철들어야 참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서울은 철이 없습니다.


ㅅㄴㄹ


내가 나를 끌어안듯이 / 사랑한다는 것 / 미워한다는 것 / 슬픔이여 슬픔의 끝에서 / 솟아오르는 꽃송이여 / 사악한 독재자처럼 / 그 굉장한 역사처럼 / 지워지지 않는 것 / 불에 덴 자국처럼 (슬픔꽃/26쪽)


올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로 끌려갔지만 / 사람들은 더없이 행복했고 / 대문밖 한치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 몇개의 부실기업이 / 으레 은행으로 넘어갔을 뿐 / 고속도로 위에선 여전히 / 대형 화물트럭이 종종거렸다 (남한민국 1982년 가을/44쪽)


+


《봄 여름 가을 겨울》(이은봉, 창작과비평사, 1989)


사랑한다는 것 미워한다는 것

→ 사랑하기 미워하기

→ 사랑 미움

26쪽


사악한 독재자처럼 그 굉장한 역사처럼

→ 몹쓸 망나니처럼 대단한 발자취처럼

→ 못난 가시울처럼 엄청난 발걸음처럼

26쪽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로 끌려갔지만 사람들은 더없이 행복했고

→ 숱한 젊은이가 싸움터로 끌려갔지만 사람들은 더없이 웃고

44쪽


고속도로 위에선 여전히 대형 화물트럭이 종종거렸다

→ 빠른길에선 오늘도 큰 짐수레가 종종거렸다

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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