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할머니의 나의 수채화 인생
박정희 지음 / 미다스북스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1.30.

인문책시렁 280


《나의 수채화 인생》

 박정희

 미다스북스

 2005.3.31.



  《나의 수채화 인생》(박정희, 미다스북스, 2005)을 이따금 되읽곤 합니다. 지난 2014년 12월 3일에 박정희 그림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갔으니, 어느새 열 해에 이르는군요. 이미 몸을 내려놓고서 떠난 사람은 더 말을 남기지 않습니다만, 문득 꿈자리에서 만나면 새록새록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아무래도 ‘몸이 아닌 넋’으로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일 테지요.


  둘레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을 들추면 ‘총칼 우두머리’가 아닌 ‘살림지기로서 붓을 쥔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어리석은 웃사내 이름을 굳이 떠올린들 무엇이 대단하거나 즐거울까요? 아름답게 살림을 지으면서 아이하고 이웃한테 사랑씨앗을 흩뿌린 할머니를 떠올릴 적에 우리 스스로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림 할머니는 곧잘 이녁 아버지 박두성 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놀고 싶은 어릴 적에, 아버지는 “하느님 뜻”이라고 하면서 ‘장님이 읽을 점글책’을 찍는 일을 시켰다지요. 박두성 님은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서슬퍼렇던 지난날 별사람을 이웃으로 지냈어요. 눈으로 글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손으로 글을 읽을 사람도 마음을 틔워야 이 나라가 아름답게 서리라 여겼다지요.


  박정희 그림할머니는 붓으로 온누리를 쓰다듬기를 바랐습니다. 뛰어난 그림이나 훌륭한 그림이 아니라, 물빛으로 촉촉히 스미는 그림 한 자락으로 이 나라가 피어나기를 바랐어요. 인천을 잘 모르는 분이라면 화평동을 ‘세숫대야 냉면거리’로 여기지만, 그곳이 ‘찬국수거리’였던 때에는 ‘색시집’이 줄줄이 있었어요. 바보스러운 웃사내한테 몸을 팔아서 살림을 보태던 아가씨가 고픈 배를 달래던 찬국수집이 나란히 있다가, 나중에 색시집이 몽땅 헐리고서 찬국수집만 남았고, 얼결에 인천 동구청이 뜬금없이 ‘냉면거리’로 띄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평동 한켠에 ‘평안의원’이 있었고, 평안의원은 가난한 사람들한테 돈을 안 받다시피 하면서, 때로는 살림돈까지 쥐어 주면서 돌보던 곳입니다. 이 평안의원은 어느 날부터 ‘평안 수채화의 집’으로 바뀌었지요. 평안의원 할아버지가 더는 돌봄이(의사) 노릇을 할 수 없던 즈음부터 ‘그림으로 온누리를 돌보는 집’으로 거듭난 셈입니다. 이 화평동 ‘평안 수채화의 집’ 가까이에는 ‘함세덕 옛집’도 있습니다.


  다들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는데, ‘정치·사회·문화·예술·교육·종교·문학’ 따위로는 이 나라를 못 바꿉니다. 이런 허접한 것으로는 이 나라를 슬쩍 덧입히는 시늉에서 그칩니다.


  이 나라를 바꾸려면 어린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보는 작고 수수한 어버이가 있을 노릇입니다. 아이한테 사랑으로 말을 가르치고, 아이랑 사랑으로 그림 한 자락을 누리고, 아이하고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지을 적에, 비로소 이 나라는 아름답게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한 손에 호미를 쥘 노릇입니다. 호미란, 손수 밥옷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른 한 손에 붓을 쥘 노릇입니다. 붓이란, 손수 살림살이를 글이며 그림으로 담는다는 뜻입니다. 일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꿈꾸고 웃고 춤추고 어우러지는 조촐한 살림집에서 온누리를 어루만지는 사랑씨앗이 싹틉니다.


ㅅㄴㄹ


평양으로 시집 간 후, 집안에 달력을 그려서 걸었더니 남편이 병원에 꼭 필요하다고 해서 매달 석 장씩 그렸으니 늘 그림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연필, 크레용, 수채화 물감, 크레파스만 보면 반가워서 보관했고, 종이도 아무것이나 고맙게 썼었다. (16쪽)


대동강으로 빨래를 하러 가게 되었다. 빨랫감들과 비누 빨래 망망이를 버주기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섰는데 봄비에 깨끗이 씻긴 새싹들이 팔랑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은사시나뭇잎은 유독 팔랑거리며 나를 유혹하는 것이 아닌가. (25쪽)


넷째 딸 순애는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사촌들끼리 소꿉놀이 하는 것만 좋아하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순애에게 물어보았다. “순애야, 너 학교 안 가련?” “엄마 맘은요?” “네가 학교에 가겠다고 하면, 예쁜 옷을 지어주고 싶어서.” “예쁜 옷? 그럼 나 학교 갈래!” 나는 약속대로 예쁜 병아리 수가 놓인 옷을 지어 입혔다. (76쪽)


아이들의 방학은 엄마인 내게도 기쁜 날들이었다. 요즘은 일을 다니는 엄마들이 많아져서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엄마들이 더욱 힘들기 마련이겠지만, 내가 아이들을 기르던 시절의 방학은 ‘함께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92쪽)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 당시, 송현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의 동료였던 신 선생이라는 분이 헌책방을 조그맣게 열고 있었다. 그 헌책방은 내가 잘 다니는 길가에 있었는데 그분이 하루는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어떤 UN군이 여러 번 찾아와서 한국의 풍속화 엽서를 찾더군요. 명령이 내리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구하지 못해 유감스러워 하면서 구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나도 구하질 못했어요. 혹시 박 선생님께 부탁드리면 구해 주시거나 직접 그려 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나도 집으로 돌아와서 뒤적여 보았다. 하지만 금강산의 엽서는 있되, 풍속을 그린 것은 찾을 수가 없어서, 바쁜 일상 중에 시간을 내어 직접 그리기로 했다 … 그 UN군에게 전했더니 무척 좋아하면서 아홉 권의 화집을 차에 싣고 와서 그림을 그려준 분께 전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홉 권의 화집은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느, 르느와르의 인물, 정물, 풍경화집이었다. (131쪽)


연필, 종이, 그리고 물감도 비싸지 않은 소박한 것으로 준비해 보자. 자, 준비가 됐다면 그리고 싶은 욕망이 든 바로 지금, 그림을 그려 보자! (2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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