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37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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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3.11.20.

칼을 쥔 너는 멍청해


《배가본드 37》

 요시카와 에이지 글

 이노우에 타카히코 그림

 서현아 옮김

 2014.12.25.



  《배가본드 37》(요시카와 에이지·이노우에 타카히코/서현아 옮김, 2014)이 나오고서 열 해쯤 지나지만 매듭을 짓는 뒷자락이 나올 낌새는 없어 보입니다. 그림꽃님이 뭘 망설이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만, 발을 땅에 디디면서 둘레를 보려고 한다면, 매듭은 가벼우면서 수월하게 지을 만합니다.


  이름을 드날리고 싶던 애송이는 칼자루를 쥐고서 칼잡이로서 우뚝선다지요. 손끝부터 발끝까지 핏빛에 피비린내로 물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칼을 그만 쥐자는 마음이 일었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칼잡이는 칼을 쥐기 앞서부터 집안일이나 살림에 등을 돌렸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짓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갉고 찢고 조각조각 도려내는 굴레를 뒤집어쓴 나날입니다. 다른 칼잡이도 비슷해요. 거의 모두라 할 칼잡이는 집안일이나 살림을 등졌습니다. 칼을 쥐면 나라를 흔들 수 있다고 여긴 어리석은 ‘칼잡이 사내’라고 할까요.


  오늘날에는 칼보다는 펑펑 쏘아댑니다. 숱한 똑똑이는 나라에서 주는 목돈을 받고서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만듭니다. 이 총칼을 이웃나라에 팔아서 돈을 벌고, 이 총칼로 이웃나라가 서로 죽이고 죽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북녘을 봐요. 총칼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는 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울까요? 북녘 한겨레한테 기쁨이나 보람이 있나요? 우리가 깃든 남녘도 매한가지입니다. 집안에 돈·이름·힘이 없는 모든 수수한 사내는 싸움터에 끌려가야 합니다. 모든 사내가 싸움터에 가지 않아요. 돈·이름·힘이 없는 사내만 끌려갑니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주먹질(폭력)을 배우고 물들고 길들지요.


  참말로 이제부터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가 아늑하려면 ‘순이돌이 모두 싸울아비가 되는 굴레’가 아니라, ‘순이돌이 누구나 살림빛이 되는 보금자리’를 일굴 노릇입니다.


  《배가본드》는 앞자락이 대단히 재미없었습니다. 칼부림이 뭐가 재미있나요? 칼을 더 잘 쓰는 재주가 뭐가 훌륭하나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칼부림에 칼장난이 덧없는 줄 느낀 미야모토 무사시가 ‘시골 흙일꾼 할배’하고 ‘시골 흙일꾼 아이’를 마음으로 품으면서 확 거듭나는 줄거리로 돌아섭니다. 이때부터는 조금 볼 만합니다. 칼재주나 칼장난이 아니라, 손수 사랑을 펴고 짓고 나누는 보금자리를 돌아보는 줄거리를 마주할 수 있을 때라야, 사람은 사람다울 만해요.


  무사시한테 논짓기를 알려준 할배는 ‘책이나 글’로 얻은 부스러기가 아닌, 언제나 스스로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익힌 살림살이를 들려주었습니다. 살림살이는 책이나 글에 없습니다. 살림살이는 우리가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고서 스스로 일구는 수수한 하루에 있어요.


  칼한테 물어보니 칼부림일 뿐입니다. 호미한테 묻다가 맨손한테 물으면 됩니다. 나비랑 잠자리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어린이한테 물어보면 되고, 아이를 사랑으로 품는 순이한테 물어보면 되어요. 사내는 칼이나 총을 쥐면 어리석은 멍청한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말아요. 사내는 수세미랑 부엌칼이랑 빨래비누를 손에 쥘 노릇입니다. 사내는 기저귀를 손에 쥐고서 아이를 돌볼 노릇입니다.


  싸움터에서 칼을 쥐는 사내도 어리석지만, 벼슬판에서 칼(권력)을 쥔 사내도 어리석습니다. 싸움터도 벼슬판도 걷어치울 노릇입니다. 순이가 싸움터나 벼슬판에 나선대서 바뀌지 않습니다. 엉터리를 걷어내어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습니다.


  모름지기 살림집에는 우두머리가 없어요. 살림집에서는 누구나 살림꾼입니다. 우두머리가 따로 있거나, 이끄는 사람을 따로 앞세운다면, 그런 데에는 삶도 살림도 사랑도 숲도 없이, 늘 피비린내에 다툼질에 벼슬자랑에 썩은물이 흘러넘칩니다.


ㅅㄴㄹ


‘이오리, 너는 흙냄새가 나는구나. 나는 피냄새가 나지 않니?’ (49쪽)


“이제부터 키울 이 볍씨 한 톨 속에 우리 목숨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61쪽)


“뱀이 나오면 모를 심어야 해. 모는 갓난애나 같아. 자기 발로 일어설 때까진 사람이 키워줘야 하는 법이지. 살 만한 바탕이 생길 때까지는.” (89쪽)


“나 자신이 스승 밑에서 배운 적이 없어서 남을 가르칠 줄 몰라 … 팔이 없다 생각하고 휘두르시오.” (99, 101쪽)


“성에서 일하는 무사가 된다는 건, 출세한다는 게 맞지? 축하한다, 무사시. 그래도 한쪽 발은 흙을 디디며 살아라. 이걸 봐라. 이 마을 게으름뱅이들이 해냈어. 논이 늘었다고.” (213쪽)


‘흙에게, 물에게, 풀에게, 벼에게, 벌레에게, 무엇에게든.’ (224쪽)


#バガボンド #vagabond #井上雄彦 #吉川英治


+


일대 다수로 싸우는 방법이 궁금하다

→ 혼자 여럿하고 싸우는 길이 궁금하다

146


너희 무사들 세계에서도 필승불패 그런 놈은 없잖나

→ 너희 싸움나라에서도 안 지는 그런 놈은 없잖나

→ 너희 싸울아비도 늘 이기는 그런 놈은 없잖나

20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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