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11.7.

수다꽃, 내멋대로 54 귀신 보는 마음



  지난 2014년 1월까지 깨비(귀신)를 으레 맨눈으로 보면서 고단했다. 깨비가 무섭지 않은 줄 알기는 했으나, 왜 깨비가 늘 보이는지 몰랐고, 알려주는 이웃이나 어른을 못 만났다. 이해 이달에 어느 넋이 곰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서 눈을 떴다. 두 눈을 동여맨 채 둘레를 보는데 모든 사람이 빛줄기로 보이더라. 그래, 난 여태까지 ‘감은눈’인지 ‘뜬눈’인지 모르는 채 살았네. 겉으로는 ‘뜬눈’이었으나, 막상 ‘뜬눈인 척’이었을 뿐이다. 나만 이러할까? 숱한 사람들은 ‘뜬눈인 척하는 감은눈’이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뜬눈을 감은 채’ 태어난다. 그리고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어른한테서 사랑을 받을 적에 ‘뜬눈을 뜬다’고 여길 만하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어버이가 욱여넣는 배움터(유치원·학교·학원)에서 그만 억눌리고 길들면서 ‘뜬눈을 잊다가 잃고서 감은눈’으로 바뀐다. 나처럼 깨비를 맨눈으로 늘 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아마 다들 말도 못 하면서 스스로 바들바들 떨거나 걱정이나 근심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서른아홉 해를 ‘깨비가 보이는 눈’으로 살아왔지만, 이 깨비를 어떻게 녹이거나 풀어내는지 아주 쉽게 깨달았다. “가렴. 넌 네가 있을 곳으로 가렴. 이곳에서 떠돌지 말고, 네가 이루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네 마음에 꿈을 그리렴.” 하고 속삭이면 된다. 넋씻이(한풀이·정령·해원)는 아주 쉽더라. 말 한 마디이면 된다. 다만, 오롯이 사랑으로 스스로 감싼 숨결로 부드러이 읊는 말 한 마디여야 한다. 2023년 11월 6일, 열여섯 살 큰아이하고 고흥읍을 다녀왔다. 곁님이 쓰는 셈틀(컴퓨터)이 먹통이 되었다. 속을 뜯고 먼지를 털고 이모저모 손보아도 먹통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셈틀을 안고서 흔들흔들 사나운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갔고, 며칠 앞서 들이받침(교통사고) 탓에 도진 무릎을 누가 송곳으로 찌르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천천히, 그저 천천히 걸었다. 셈틀집에 우리 셈틀을 맡길 적에 큰아이가 조곤조곤 얘기했다. 나는 옆에서 큰아이 말을 들으며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묵직한 셈틀을 내려놓고서 무릎을 달랜다. 둘이서 저잣마실을 하는데, 걷기 힘들 만큼 무릎이 쑤셔서 길가에 서거나 앉아서 쉬고, 다시 걷고 또 쉬기를 되풀이했다. 부릉부릉 쇳덩이(자동차) 소리가 좀 시끄러워서 읍내 안골숲을 걸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잎노래를 들으며 무릎을 어루만졌다. 셈틀집에서 전화를 한다. “멀쩡한데요? 잘 움직이고 말썽인 데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큰아이가 웃으면서 말한다. “아버지, 이 아이(셈틀)가 바람을 쐬고 싶었나 봐요. 바람을 쐬니까 즐거워서 스스로 낫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컴퓨터가 마음이 없다고 여기지만, 컴퓨터한테 어떻게 마음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 셈틀도 바위도, 우리가 멘 가방도, 우리가 쥔 붓과 종이도, 우리가 읽는 책도 모두 마음이 있어. 모든 곳은 모든 숨결이고, 이 숨결을 느끼면서 품는다면 총칼(전쟁무기)뿐 아니라, 허울(권력·재산·명예)을 모두 내려놓고서 어깨동무를 하겠지.” 언제 어디에서나 바람을 느낀다. 요새는 깨비를 얼핏 느끼기는 하되 거의 안 느낀다. 왜냐하면, 깨비가 아닌 숨결을 읽고 느끼면서, 내 숨결하고 이웃 숨결 사이에 사랑이라는 다리를 놓을 마음이거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부른다. 보임꽃 〈여섯결(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은 ‘다섯결(오감)’을 넘어 ‘여섯째로 보고 느끼고 아는 결’을 잘 그려내었다. 나는 〈여섯결〉을 숱하게 다시 보았는데, 다시 볼 적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쩜 그렇게 ‘깨비 보는 아이’ 마음을 안 읽을 수 있을까? 그러나 마지막 아이는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려 주었고, ‘눈감던 어른’은 마침내 눈을 뜨고서, 모두 사랑으로 녹여야 하는 줄 알아차리고서 몸을 내려놓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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