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3.8.6.


《아이들의 풀잎노래》

 양정자 글, 창작과비평사, 1993.6.15.



새벽에 하루를 열고서 부산마실을 한다. 길에서 기다리며, 버스나루에서 기다리며, 시외버스를 타며,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며, 곰곰이 하늘을 보고 마을을 보다가 붓을 쥐고서 노래를 쓴다. 보수동 〈보수서점〉에 먼저 들른다. 먼길을 나서면 얼추 열 시간 즈음 입을 다문다. 길에서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지는 않으니, 첫 말소리를 틀 때까지는 조용히 지낸다. 오늘은 느긋이 책마실을 하고서 ‘곳간’에서 앞으로 펴낼 책을 놓고서 한참 이야기를 한다. 누리글이나 목소리로 생각을 나눌 수도 있되, 얼굴을 보며 느긋이 생각을 나누면, 혼자 헤아릴 적에는 놓친 대목을 알아차리거나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의 풀잎노래》를 오랜만에 되읽다가, 1993년만 해도 한창 매질을 하던 때이기는 했으나, 아이들을 때리는 이야기도 버젓이 노래(시)로 흘러서 놀랐다. 쓸쓸하다. 1993년에는 이런 글도 ‘문학’으로 쳤을 테지만, 아이들 뺨을 갈기는 손을 그리는 마음이란, 얼마나 안쓰러운가. 스스로 밝히니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뺨때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글로 적으면서 부끄럽지 않았을까? 오늘날 숱한 ‘시인’은 멀쩡한 글을 쓴 적이 없을까? 사람들이 흔히 잊는데, 우리는 2002년에 접어든 무렵에도 ‘주먹나라(폭력세계)’였다.


비록 매 맞고 매 때리는 사이지만

그애 뺨과 내 손의 살이 맞닿는 순간

남모를 애틋한 느낌이 잠깐 오간다

내가 잠깐 복잡한 심정으로 망설이는 사이

눈치 빠른 놈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친다

“선생님, 제발 살살 때려줘요

성호 여드름 터져요.” (여드름/86∼87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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