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5.

노래책시렁 174


《인부수첩》

 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9.30.



  글을 쓰려면 사랑글을 여밀 일입니다. 사랑이 아닌 짝짓기를 쓴다면 덧없습니다. 사랑을 등진 채 설레발을 쓴다면 엉성합니다.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서 꾸미기만 한다면 허울입니다. 글을 읽으려면 살림글을 살필 노릇입니다. 살림이 아닌 치레를 찾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살림을 잊은 채 돈바라기를 쓴다면 넋나갔습니다. 살림을 가꾸지 않고서 쳇바퀴를 둘러댄다면 숨빛을 잃습니다. 《인부수첩》을 서른 해 만에 되읽습니다. 섣부르거나 어설피 높이는 목소리가 곳곳에 있지만, 이 노래책을 이루는 바탕은 ‘설익되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라되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면서 헤매는 마음이 진득하게 흘러요. 그렇다면 왜 《인부수첩》은 ‘설익은 사랑’일까요? ‘땀흘리는 일’을 ‘집 바깥’에서만 찾거든요. 예나 이제나 우리네 일글(노동문학)은 ‘집 바깥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뚝딱거리는 모습을 옮겨야 한다고 여기는 틀에 갇힙니다. 생각해 봐요.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짓는 하루도 일(노동)입니다. 아이돌봄도 일(노동)입니다. 모름지기 ‘일글’이란, 살림빛과 사랑빛을 삶빛으로 녹여낼 적에 태어납니다. 우리나라 일글은 너무 오랫동안 ‘웃사내 바깥벌이’에 얽매인 채 사랑씨앗이 없이 목소리만 지나치게 앞섰어요.


ㅅㄴㄹ


손가락을 깨물고 싶다 / 혈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 갖은 이 설움의 깊이를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 수없이 갈아온 / 증오의 칼날을 가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부수첩 30 시들지 않은 사랑으로/74쪽)


사랑을 위하여 / 술을 끊기로 했다 / 환장하게 그리운 사랑아 / 이렇게 뜨거운 우리들 그리움에서 / 쓰디쓴 술냄새가 난다면 / 말도 안도니다 / 긴 밤을 박꽃처럼 지새운 / 그대 순결한 기다림의 가슴에 / 돌아가야 할 우리 / 펄펄 끓어야 할 젊은 심장에서 / 식어버린 술냄새가 난다면 / 말도 안된다 (술을 끊기로 했다/116쪽)


+


《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


혈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 핏글을 쓸 뜻이 아니라

74쪽


휭허니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 휭허니 타고 서울까지 가서

82쪽


나의 시는 그러한 나의 비겁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내 노래는 그러한 꼼수를 둘러댈 뿐이다

→ 내 노래는 그러한 굽신질을 감쌀 뿐이다

→ 내 노래는 그러한 더럼짓을 꾸밀 뿐이다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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