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삶꽃
수다꽃, 내멋대로 53 잡초는 없다
1999년에 보리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기 앞서 진작에 《잡초는 없다》를 읽었다.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두고서 몸일(육체노동)을 하며 살림돈을 벌던 그무렵, 고졸내기로서 마음일(정신노동)을 하는 길을 헤아리며 헌책집을 ‘책숲(도서관) + 배움숲(학교)’으로 삼았다. 새벽 두 시∼다섯 시 사이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고서,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열한 시까지 오롯이 ‘나를 스스로 바라보고 일깨우는 배움살이’로 하루를 보냈다. 열린배움터를 그만두었으나, 그곳을 다닐 적에 열린책숲(대학도서관)하고 책집(대학교 구내서점)에서 곁일을 했다. 두 곳에서는 “최종규 씨는 자퇴를 하셨어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오셔요. 당신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대학생을 여태 못 봤어요.” 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를 그만둔 뜻은, 배우고 싶어 대학교에 들어왔는제 정작 대학교는 술판·노름판에 허덕이는 민낯이라, 저 스스로 배움길을 찾으려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밥벌이로 삼을 밑돈만 조금 벌고, 하루를 온통 스스로 배우는 길에 쓸 생각이에요. 쫄쫄 굶을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배워 보려고요.” 하면서 두 곳(대학도서관 + 대학 구내서점)에서는 더 일하지 않기로 했다. 헌책집을 배움숲이자 책숲으로 삼을 만한 까닭을 모르는 분이 많다. 헌책집은 “우리가 읽은 모든 책”이 드나든다. 새책집은 “바코드를 찍어서 팔 수 있는 책”만 드나든다. 비매품·정부간행물·옛날 신문·지역문인 문집·소장학자 자비출판 논문은 오직 헌책집에서만 만난다. 나는 우리말을 스스로 익히는 길을 갈 생각이었던 터라, ‘우리나라 모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책’을 다 훑으려고 헌책집을 드나들었다. 모든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는 그들 대학교에서 낸 책이 아니면 안 다루고 안 갖추더라. 이러던 어느 날 《잡초는 없다》를 읽으며, 이런 책이름을 붙일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반가웠지만, ‘없다’란 대목은 걸렸다. “잡초는 없다”라는 말은 “잡초는 있다”란 말하고 나란하다. 스스로 풀꽃나무하고 사람을 ‘잡초냐 아니냐’로 바라보기에 ‘없다·있다’로 말장난을 했을 뿐이다. 참말로 몹쓸풀이 없다고 느끼는 삶이라면 이런 말을 안 쓰고 “풀이 있다”라고만 한다. 또는 “풀이다”라 할 테고. “나쁜 아이란 없다”가 아니라 “모두 아이야”인걸. “착한 아이·나쁜 아이”를 가르려는 마음이 “나쁜 아이란 없다”란 말에 깃든다. 모든 아이는 서로 다르면서 스스로 새로운 숨결인 사람이니, “아이입니다”나 “모두 아이입니다”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쁜 사람은 없다”라 말하는 누가 있다면, 이이는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하는 셈이라고 느낀다. 나는 “나쁘거나 좋다고 가르는 잣대(지식·이론·논리·종교·철학·사상·정치·문화·예술·학문)가 있을 뿐, 사람은 그저 사람입니다.” 하고 얘기한다. 모든 풀은 쓰임새가 다르고, 잎이며 줄기에 뿌리가 다르다. 다 다른 풀은 다 다르게 숨살림이요, 다 다른 사람은 저마다 새롭게 별빛님이다. 온누리를 보라. 사람이 있고, 숲이 있고, 들이 있고,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고, 풀벌레가 있고, 새가 있고, 헤엄이가 있고, 비구름이 있고, 별이 있고, 너랑 내가 있어, 우리가 오늘 이곳에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