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따리, 한글을 지키다 - 주시경과 호머 헐버트의 한글 이야기 토토 역사 속의 만남
안미란 지음, 방현일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 / 토토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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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3.10.17.

책으로 삶읽기 854


《주보따리, 한글을 지키다》

 안미란 글

 방현일 그림

 토토북

 2018.4.5.



《주보따리, 한글을 지키다》(안미란, 토토북, 2018)를 읽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이 책은 “주시경과 호머 헐버트의 한글 이야기”처럼 작은이름이 붙는다. 얼핏 ‘주시경·주보따리’ 님이 우리 한글을 어떻게 돌보고 가꾸고 빛내어 오늘날 우리가 누구나 글살림을 누릴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풀어낸 동화인 척하되, 정작 알맹이는 뜬금없거나 터무니없다 싶은 대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어넣을 뿐이다. ‘호머 헐버트’가 없었으면 ‘한글’을 누구나 쓰는 길을 세울 수 없었다는 듯한 줄거리로 짠 동화는 무엇을 밝히거나 말하는 셈일까? 설마 주시경 님이 쓴 글을 안 읽고서 이 동화를 썼을까? 책끝에 붙인 도움책(참고문헌)에는 주시경 님이 손수 쓴 책이 없다. 주시경 님이 쓴 책이 버젓이 있는데, 다른 책보다 주시경 님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갈고닦은 숨결과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도움책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더구나 이 책은 ‘틀린’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동화인데, 왜 일부러 ‘없는’ 말과 일을 만드는지 아리송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글쓴이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훈민정음·한글’ 둘 사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세종·주시경’ 두 사람이 우리글을 놓고서 어떻게 이바지를 했는지 까맣게 모른다고 여길 만하다. 조선 오백 해에 걸쳐서 늘 뒷전이자 따돌림이던 우리글 ‘훈민정음’은 ‘암글·아해글’이었다. 한문은 ‘수글’이었다. 임금을 비롯한 벼슬아치에 나리는 몽땅 사내(숫놈)였고, 사내들은 중국바라기(중국 사대주의)에 사로잡혔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킨 사람은 바로 가시내(여자)하고 어린이였다. 우리나라가 일본 총칼에 잡아먹혀 무너질 즈음에 배움길에 선 주시경 님은 이 얼거리와 뿌리와 민낯을 모두 온몸으로 지켜보면서 스스로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 한문교육을 떨쳐내고서 새길을 나섰고, 새길을 나서면서 “암글이자 아해글로 뒷전에 밀린 훈민정음을 온글(누구나 쓰는 글)로 삼는 길”을 펴자고 생각했다. 일찌감치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이녁 집안부터 성평등으로 보금고, 독립운동에 한몸을 바치는 길에 서면서 “모든 사람이 스스로 배울 때라야 홀로서기를 이룬다”고 새롭게 깨달아 ‘한글’을 누구나 쉽고 즐겁게 쓸 수 있는 뼈대를 세우고 밑틀을 닦고, 이 모두를 가르치는 첫 길잡이 노릇을 밤낮없이 했다. 이러다 보니 몸을 너무 많이 쓰고 말아 이른나이에 갑자기 숨이 끊어졌다. 그저 주시경 님 삶자취를 차분하게 그리기만 하면 되는데, 엉뚱하면서 틀린 대목을 끼워넣어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다. ‘창작’이란 허울에 사로잡힌 탓일까? 창피하고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시경은 가방 대신 보따리를 들고 다녔어. 가방 살 돈이 부족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짐이 워낙 많아 가방에 다 넣을 수가 없었거든. (6쪽)

→ ‘신학문·서양’을 좇는다면서 구두에 양복을 걸치는 겉모습으로는 홀로서기(독립)를 할 수 없다고 여긴 주시경 님이다. 그래서 일부러 ‘가방 아닌 보따리’를 들었고, 먼길도 씩씩하게 걸어다니면서 길잡이(교사) 노릇을 했다.



고종 임금님이 다스리던 그 당시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조선 팔도에 단 한 사람도 없었어. 당연히 영어를 통역해 줄 사람도 없었고. (7쪽)

→ 터무니없는 말이다. 여러 나라 선교사가 일찌감치 들어왔고, 천주교도 일찌감치 들어오면서, 이웃말(외국말)을 익힌 조선사람이 꽤 있었다. 천주교와 선교사가 아니더라도, 일본사람은 진작 이 땅에 들어왔고, 일본사람이 쓰던 ‘일본 영어책’을 본 조선사람도 많다.



“소리글자라면 세종 대왕께서 만든 언문 같은 거 아닙니까?” …… “긴 머리는 낡은 풍습입니다. 긴 머리를 치렁치렁 땋고 다니면 우리의 사고방식도 변하지 않습니다.” 배제학당 선생의 말이다. (35, 39쪽)

→ 주시경 님은 배제학당 길잡이 말을 듣고서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서당을 다니다가 머리를 잘랐다.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배우던 어느 날, ‘조선말’로 새기고 읽으면 쉽게 마칠 텐데, 억지로 한문을 오래 길게 배우느라 우리나라가 무너진다고 깨달아, 모든 낡은 틀하고 끊는다는 뜻으로, 집안마저 끊겠다는 다짐으로 머리를 잘랐다. 엉터리 이야기를 동화에 끼워넣지 말 노릇이다.



시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남들처럼 전차를 탈 수도 인력거를 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거리에서 떡 하나를 사 먹으려 해도 돈이 없어 굶기 일쑤였다. (46쪽)

→ 지난날에 전차나 인력거를 타는 사람은 드물었다. 거의 다 걸어다녔다. 가난해서 걸어다녔다기보다, 누구나 으레 걸었을 뿐이다. 걸어다니던 사람을 다 ‘가난뱅이’로 몰아넣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거리에서 떡을 사먹는다는 대목은 뭔가? 왜 사먹어야 하는가? 지난날 사람들은 으레 걸어다니고, 주전부리도 딱히 안 했다. 요새야 사람들이 가까워도 버스에 전철을 타고, 군것질도 자주 한다지만, 이런 요새 모습을 지난날 삶에 억지로 끼워맞춰서, ‘주시경하고는 안 얽히는, 그야말로 없던 얘기’를 만들지 말 노릇이다.



“문법에 맞게 썼는지 그르게 썼는지 판단할 기준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훈민정음 연구에 평생을 바칠 각오를 세웠습니다.” 시경은 출판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틈틈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헐벗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50쪽)

→ 말을 담는 글이요, 말은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배웠다. ‘말법(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말법’을 갈무리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말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글(훈민정음)을 살피는 길을 가는가? 도무지 앞뒤조차 안 맞는 이런 뜬금없는 대목을 왜 집어넣는가? 이렇게 하면서 ‘헐벗’을 우러르도록 줄거리를 짜야 하는가? 주시경 님은 ‘훈민정음 연구에만 온삶을 바치’지 않았다. ‘훈민정음 연구도 했’다. 한겨레 모든 사람이 제 뜻과 생각과 넋을 우리글에 수월하게 담고서 나누고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길에 온삶을 바쳤다.



“박사님, 저나 아랫사람을 시키시지, 손이 더러워졌습니다.” 서재필은 그 말을 듣더니 껄껄 웃었다. “이봐 시경 군, 나는 미국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네.” (64쪽)

→ ‘낡은틀(고루한 전통)’을 일찌감치 끊은 주시경 님이 “저나 아랫사람을 시키시지”처럼 말했을까? 동화라고 해서 아무 말이나 마구 끌어들여도 되는가? 댕기머리만 끊는대서 낡은틀을 끊는 삶이 아니다. 주시경 님은 집에서도 ‘성평등’을 폈는데, 무슨 윗사람·아랫사람으로 가르는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넣는가?



아무리 양반 제도가 없어지고 만백성이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평복이 서재필과 나란히 앉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79쪽)

→ 이 동화책이 ‘한글을 지킨 주시경’을 다루는 줄거리가 맞는가? ‘평등이란 길을 삶에서 펴지도 못 한 바보’를 그리는 줄거리 아닌가? 터무니없는 대목이라 말조차 안 나온다.



국어사전 (92쪽 그림)

→ 나라이름을 ‘조선’으로 쓰던 그무렵에는 ‘조선말사전’이나 ‘조선어사전’ 같은 이름을 붙였다. 주시경 님이 ‘한글’이란 이름을 지은 대목을 헤아린다면 ‘한글사전’이라든지 ‘한글모이’처럼, 또는 ‘말모이’처럼 글씨를 넣어야 알맞을 텐데.



+


조선 팔도에 단 한 사람도 없었어

→ 이 나라에 한 사람도 없었어

→ 우리나라에 한 사람도 없었어

7쪽


쑥보다 더 새파란 청개구리 한 마리가

→ 쑥보다 더 푸른 풀개구리 한 마리가

11쪽


어깨동하는 친구, 동무라고요, 나의 벗

→ 어깨동무하는 사이, 동무라고요, 벗

20쪽


주경야독 주시경! 옛사람은 낮에 밭 갈고 밤에 글 공부했는데

→ 낮일 밤배움 주시경! 옛사람은 낮에 밭 갈고 밤에 배웠는데

47쪽


아르바이트는 하루 종일 일하지 않습니다

→ 곁일은 하루 내내 일하지 않습니다

→ 틈새일은 하루 내내 일하지 않습니다

4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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