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9.28. 가시아버지 떠나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가시아버지가 오늘 낮에 몸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침에 고흥 도양읍 마을책집 〈더바구니〉로 책꾸러미를 챙겨 가서 노래꽃(시)을 천에 열두 자락 옮겨적고서, 고흥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나와서, 북적이는 한가위 시골에서 저잣마실을 한 뒤에, 시골버스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한참 볕바라기를 하며 걸었는데, 가시아버지 얘기를 듣고서 부랴부랴 길(교통편)을 살폈습니다. 이튿날이 한가위라, 용케 순천에서 용산으로 가는 이른아침 칙폭(기차)이 몇 자리 있습니다. 단골 택시 기사님한테 말씀을 여쭈어, 새벽바람으로 택시를 달려 순천으로 가기로 합니다.


  가시아버지는 내내 앓았습니다. 여든네 해를 앓았습니다. ‘끔찍한 좀(병)’을 앓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하고 먼 ‘불앓이(화병)’를 했어요. 이래도 불앓이에, 저래도 불앓이였습니다. 처음 가시아버지를 만나던 날, 바로 이 불앓이가 가시아버지 몸마음을 불태울 텐데 싶었으나, 그무렵 가시아버지는 ‘아직 웬만해서는 팔씨름도 안 진다’고 여기는 웃사내 같은 마음마저 짙었습니다.


  앓기에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앓는 사람은 스스로 허물을 벗으려 할 적에 모든 앙금을 녹이면서 나비로 거듭납니다. ‘앓’기에 ‘알’ 수 있어요. 앓지 않는 사람은 알지 않습니다. ‘아프’기만 하는 사람은 알아가지 않더군요. 아픔이 아닌 앓이를 품으면서 모든 미움에 생채기에 멍울에 고름에 부스러기에 시샘에 짜증을 녹여내어야, 사랑을 알아가는 길에 섭니다.


  몸을 벗은 가시아버지는 경기 일산에서 문득 전남 고흥으로 찾아왔습니다. 몸을 벗으면 바로가기(순간이동)를 하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나 몸을 벗지 않아도 바로가기를 합니다. 우리는 늘 마음으로 바로가기를 합니다. 마음으로 먼저 만나고, 마음으로 먼저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글읽기(문해력)’를 왜 못 하겠습니까? 마음을 안 틔우고, 마음을 안 가꾸고, 마음에 사랑씨앗을 안 심는 탓입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책을 꽤 썼기에 글읽기를 해내지 않아요. 마음이 없는 이는 제아무리 콧대 높은 글바치(지식인)라 하더라도 골(뇌)이 썩어문드러집니다.


  돈이 많기에 잘난 듯 여기는 이가 많아요. 이름을 드날리기에 자랑하는 이가 많아요. 힘이 세기에 우쭐대는 이가 많아요. 뭐, 그러라지요. 사랑이 없는 채, 숲을 안 품는 채, 아이 곁에 없는 채,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들, 스스로 삶이 기쁠 턱이 없습니다.


  책숲종이(도서관 소식지)인 〈책숲 1006〉을 아직 매듭을 안 지었는데, 몸을 벗은 가시아버지 이야기를 더 담아야 하기 때문이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생각씨앗을 사랑으로 심으려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삶입니다. 이오덕 어른이 밝힌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그저 삶만 옮기면 되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숲을 품으면서 아이 곁에서 삶을 배우는 동안 저절로 펴는 빛나는 글쓰기’일 적에 ‘삶글쓰기’입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만, 서울 잿집(아파트)에서 살더라도 글을 못 쓸 까닭은 없습니다만, 골목빛을 등지거나 골목풀꽃을 사랑하지 않는 서울내기(도시인·시민)는 겉글이나 꾸밈글에서 안 헤어나더군요. 다시 말해서, 시골에서 살더라도 풀꽃나무랑 마음을 틔워 수다를 떨지 않는 이들은 겉치레에 갇힌 글쓰기를 만들려고 용을 씁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글을 쓰려면, 책을 읽으려면, 스스로 사랑하려면, 부디 서울(도시)을 떠나십시오. 숲을 품으십시오. 어쩔 길이 없어서 서울에 남아야 한다면, 부디 잿집과 부릉이를 버리십시오. 골목집에 조용히 깃들어 해바람비를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언제나 하늘빛 마음으로 하루를 사랑으로 짓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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