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7.23.

수다꽃, 내멋대로 48 너 참, 피곤하다



  오늘을 이루는 몸짓은 으레 진작부터 했다. 아직 몸에 배지 않았으면, 오늘부터 다스려서 몸으로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숲노래 씨는 어버이집에서 홀로서기를 한 1995년에도,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93년에도 수저를 챙기며 살았다. 예전에는 도시락을 챙겼으니 수저도 으레 챙길 만하지만, 도시락을 안 챙겼어도 ‘내 수저’를 들고 다니면서 한벌살림(1회용품)을 안 쓰려 했다. 1992년이나 1995년에도, 2002년이나 2005년이나 2012년에도, 이런 매무새를 지켜보는 둘레에서는 “너 참, 피곤하다.”라든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라든지 “일회용품 안 쓴다고 지구가 죽냐?”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다. “난 내 수저를 챙길 적에 즐거워.”라든지 “수저에 천바구니에 물병을 챙기는 사람을 힘들게 산다고 바라보는 네 눈길이야말로 힘들지 않아?”라든지 “난 푸른별을 살리려고 내 수저나 천바구니나 물병을 챙기며 다니지 않아. 이렇게 다니면서 스스로 즐겁고 넉넉하거든.” 하고 대꾸했다. 어마어마한 뜻(대의명분)을 품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말 ‘일’은 ‘일어나다·일으키다·일다’로 잇는 말씨앗이다. 모든 ‘일’은 물결이 일듯,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나기에 하고, 너울이 일렁이듯, 스스로 몸짓이며 매무새를 새롭게 일으키려고 한다. 1992년부터 책에 눈을 떴고, 책에 눈을 뜬 그날부터 책집마실을 하면 으레 ‘차고 넘치도록’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책을 장만했다. 1992년이나 2023년이나 수레(자동차)를 안 몬다.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린다. 좀 먼길이면 버스를 탄다. “아니, 책을 그렇게 많이 사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다 이고 지고 다녀? 차 좀 사. 차 살 돈 없어?” 하고 따지듯 묻는 분한테 “제가 건사하는 책은 스스로 품으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제가 온몸으로 읽을 꾸러미로 스며요. 손쉽게 수레에 실어서 나르려면, 아예 책집마실부터 안 하면 될 테지요. 책 몇 꾸러미를 이고 지면서 힘들거나 땀난다면, 뭣 하러 틈을 내어 책읽기부터 하나요? 책부터 안 읽으면 안 힘들지 않나요?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면 글을 안 써도 되어요. 아이도 안 낳으면 되어요. 아이를 낳았어도 천기저귀를 안 대고, 손빨래를 안 하면, 안 힘들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들이고 힘을 들이고 사랑을 들이고 숨결을 들이면서, 이 모든 일을 물결이 일렁이듯 노래하면서 즐길 적에, 저부터 스스로 웃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웃으면서 신나게 책짐을 이고 지고 노래하면, 우리 아이들하고 이웃 아이들은 ‘삶이란 늘 노래’라는 대목을 물려받을 만해요.” 하고 대꾸한다. 이런 말을 듣는 분은 으레 “참말로 그대는 제멋대로 사네!” 하더라. 그래서 “저는 마땅히 ‘제 멋’을 그대로 살리며 살아야지요. 이녁은 ‘이녁이라는 삶멋’을 그대로 살리며 살아야 ‘산빛’일 테고요.” 하고 보탠다. ‘제멋대로’란, ‘함부로·아무렇게나’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 + 멋 + 대로’ 하루를 그리고 삶을 지으며 오늘을 노래할 노릇이다. 나는 내 하루를, 너는 네 하루를 살아야잖은가? 흉내를 낼 일도, 훔칠 까닭도, 따라갈 일도, 쳇바퀴를 돌 까닭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멋을 보는 길대로’ 살아갈 적에 스스로 하늘빛이다. 그런데 ‘제멋대로’가 마치 ‘함부로·아무렇게나’라도 되는듯 밀어붙이는 이 나라이다. 우리가 스스로 ‘제멋대로’일 줄 알아야 ‘다 다른 눈빛과 숨빛과 삶빛으로 선’다. 제멋을 안 찾기에 흉내를 내다가 훔치거나 빼앗거나 괴롭힌다. 제멋을 누리고 나눌 줄 알기에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걸어간다. 마지막으로 그분들한테 한 마디를 보탠다. “제가 힘들게 산다고요? 제가 참 힘든 사람이라고요? 제 마음에는 ‘힘듦’이 없어요. 제 마음에는 ‘스스로 그리는 꿈하고 사랑’만 있어요. “너 참 피곤하다”하고 말씀하는 그대야말로 스스로 마음하고 몸에 ‘난 힘들어!’를 새기는 꼴이랍니다.” 나는 “힘든 일”이 아닌 “힘을 들이는 일”을 스스로 짓고 누린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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