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은 뭐야? (2022.10.24.)
― 부천 〈용서점〉
우리말을 한글로 드러내어 쓰기에 못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자를 드러내든, 영어를 드러내든, 모두 똑같이 못 알아볼 만합니다. 우리말을 한글로 쓰지 않는다면 힘꾼(권력자)입니다. 힘꾼(권력자)이 아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인 분들은 언제나 쉽고 부드러우면서 상냥하게 낱말을 하나하나 살뜰히 가리고 골라서 쓰지요. 글자랑에 글치레를 하는 이들은 힘을 내세우고 이름을 드높이면서 돈을 거머쥐려는 얕은 속셈이기에, 말을 쉽게 안 하고 글을 쉽게 안 써요. 사랑이 없으니 힘·이름·돈에 얽매이고, 사랑을 배우려 하지 않으니 어린이하고 등져요.
우리는 날씨를 읽을 노릇입니다. ‘기후·기상’이 아닌 ‘날씨’를 느끼고 보고 헤아릴 일이에요. 날씨를 ‘날씨’라 하지 않는다면, 말씨를 ‘말씨’라 하지 않는다면, 솜씨를 ‘솜씨’라 하지 않는다면, 마음씨를 ‘마음씨’라 하지 않는다면, 모두 힘·이름·돈에 얽매여 사람들을 속이는 짓에 이바지하는 셈입니다.
씨앗을 ‘씨앗’이라 말하지 않고서 굳이 ‘종자’라고 할 적에는 어린이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숲을 ‘숲’이라 말하지 않을 적에도, 시골을 ‘시골’이라 말하지 않을 적에도, 어린이를 ‘어린이’라 말하지 않을 적에도, 다들 꿍꿍이를 감추거나 힘·이름·돈에 길든 나머지 삶을 잊었구나 싶더군요.
한자말이라 나쁠 일이 없습니다. 말뜻을 안 살필 뿐 아니라, 말 한 마디가 마음을 바꾸는 씨앗이라는 대목을 깊거나 넓게 보려 하지 않기에 얄궂습니다. ‘출전’은 “싸우러 나간다”는 소리입니다. 싸우러 나가면 무슨 마음이 되어 무슨 일을 할까요? 스스로 새롭게 나아가려는 하루라면 ‘출전’이 아닌 ‘나들이’로, 그러니까 가볍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신나는 소꿉놀이로 누리려는 마음으로 바라볼 적에 나란히 노래하는 자리를 이룹니다.
부천 〈용서점〉에 깃든 저녁에 수다꽃을 함께합니다. 그림책을 새롭게 읽는 마음에, ‘책집’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늘 “사랑은 뭐야?”처럼 수수한 말 한 마디를 품는 마음이어야지 싶습니다. “누가 나빠? 누가 잘 했어?”가 아닌, “사랑은 뭐지?”를 스스로 묻고 서로 물으며 길찾기를 해야지 싶어요. 모든 하루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일구고, 사랑으로 나누는 마음과 말과 숨결과 눈빛이어야지 싶어요.
책집이란, 책 하나를 사랑으로 나누는 곳입니다. 책집이란, 책 하나를 사랑으로 쓰고 엮고 지은 사람들이 심은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는 곳입니다. 책집이란, 마을에 사랑씨앗을 함께 심으려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이는 곳입니다.
ㅅㄴㄹ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옥명호, 옐로브릭, 2018.4.10.)
《조국은 하나다》(김남주, 남풍, 1988.9.1.)
《한국고전의 재인식》(정병욱, 홍성사, 1979.5.5.첫/1981.4.30.3벌)
《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한준식, RHK, 2019.5.28.)
《며느라기》(수신지, 귤프레스, 2018.1.22.첫/2018.4.17.11벌)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10.30.)
《J 이야기》(신경숙, 마음산책, 2002.8.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