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7.15.
수다꽃, 내멋대로 46 모나미
우리는 ‘모나미 볼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국민기업’일까, 아니면 ‘볼펜·연필 한 자루조차 제대로 못 내놓는 나라’일까?
나는 1982년에 처음으로 볼펜·연필을 쥐었고, 2016년까지 ‘모나미 볼펜’에 ‘국산 연필’만 썼다. 바로 이해부터는 ‘모나미 볼펜·국산 연필’을 아예 안 쓴다. 서른네 해를 ‘사랑(애국)’해 주었으면 넉넉하다고 본다. 아무리 볼펜똥이 번져서 공책을 버려야 했어도, 볼펜잉크가 갑자기 흐르거나 터져서 가방과 옷에 얼룩을 남겼어도, 여름이면 볼펜대가 휘고, 겨울이면 잉크가 굳고, 공(볼)은 툭하면 빠져도, 서른네 해를 꿋꿋하게 ‘사랑’해 주었다.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책을 써내고서 조촐히 책잔치를 열었다. 이때 함께한 이웃님 한 분은 글붓집(문방구)에서 일하셨는데, “숲노래 님은 늘 글을 많이 써야 하는데 ‘모나미 볼펜’ 말고 ‘좋은 볼펜’을 쓰셔야 하지 않아요? 제가 좋은 볼펜을 선물해도 될까요?” 하고 얘기하셨다. “네? 좋은 볼펜이요? 좋은 볼펜이 어디 있어요? 좋은책 나쁜책이 따로 없듯, 좋은 볼펜과 나쁜 볼펜은 있을 수 없을 텐데요?” “아니에요. 아직 좋은 볼펜을 안 써보셔서 그래요. 저는 문방구를 하는데요, 모나미 볼펜을 안 써요. 숲노래 님도 한번 모나미 말고 다른 볼펜을 써보시고서 생각하셔요.” “에, 설마요? 그렇지만, 저는 글살림을 좋아하니까, 보내주시면 써볼게요.”
이웃님은 곧장 ‘일본 볼펜’ 12자루를 보내셨다. 나는 여섯 달 동안 안 건드렸다. 아니 여섯 달을 넘기고 또 여섯 달을 넘겼으며, 다시 한 해를 넘겼다. 속으로 “굳이 일본 볼펜을?”이라 여겼다. 그러나 마침내 ‘모나미’가 자꾸자꾸 말썽을 일으키며 아예 쓸 수 없어 속이 탄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아, 그때 이웃님한테서 받은 글붓이 있지. 그 글붓을 써볼까?”
아예 안 건드린 지 이태가 지난 볼펜이 왜 이리 잘 나오지? 볼펜똥은 아예 없다시피 하네. 볼펜대가 휘지 않네. 허허.
2001년에 처음 일본마실을 했다. 그때는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했고, 윤구병 님과 함께 일본으로 ‘사전 기초자료’를 사려고 갔다. 나는 짐꾼을 맡기로 했다. 우리는 일본 도쿄 간다책골목에서 책을 어마어마하게 사들였고, 책무게가 200kg이 넘었다. 아직 ‘미국 쌍둥이빌딩 사건’이 터지기 앞서라, 그때에는 날개(비행기)를 탈 적에 ‘무게’가 아닌 ‘짐 갯수’를 따졌다. 100kg이 넘는 책을 담은 커다란 책짐 둘을 낑낑대며 안고 끌면서 날개에 실어 우리나라로 데려왔다. 아무튼 이때에는 짐꾼으로 함께 갔기에 ‘일본 글붓집’을 구경하지 못 했다. 이러고서 열일곱 해가 지난 2018년에 두걸음째 일본마실을 해보았고, 이때에는 ‘초등학교 옆 작은 글붓집’을 일부러 찾아가서 그곳에서 파는 꾸러미(공책)와 붓(연필)과 지우개를 잔뜩 샀다. ‘일본 연필’이 이렇게 잘 나가고 야무지구나 싶어 놀랐다. 또한 2018년 이해에 도쿄 간다책골목에서 “일흔 해가 넘은 예전 일본 연필”을 단돈 1만 원에 열두 자루를 장만했는데, 일흔 해가 넘었어도 나무내음이 그득하면서 아주 잘 나가더라.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눈먼사랑’이 아닌 ‘참사랑’을 하고 싶다. 그냥그냥 ‘나라사랑’을 하기보다는 ‘글사랑’과 ‘붓사랑’을 하고 싶다. 우리는 꾸밈머리(ai)에 목돈을 쏟아붓기 앞서 “볼펜·연필 한 자루부터 제대로 마련하고 깎아서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글살림을 할 수 있는 터전”부터 일굴 노릇이지 않을까? 나라에서 꾸밈머리에 쏟아붓는 돈 가운데 1/100000이라도 ‘모나미’에 들여서, ‘모나미 볼펜’이 내로라할 만큼 훌륭한 글붓으로 거듭나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일본 찰칵이(사진기)를 쓴다. 나는 ‘미놀타·니콘·캐논’ 세 가지를 필름을 쟁이는 찰칵이로 쓰다가, 누리빛(디지털)으로 바뀔 적에는 캐논 하나로 추슬렀다. 우리나라에서 찰칵이를 번듯하게 내놓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 찰칵이를 쓰고프기도 하다만, 아직 까마득하지 싶다. 나는 아직도 ‘하이샤파 연필깎이’를 쓰는데, 어느 날 속을 쓸고닦으려고 뜯으니, ‘연필깎이 속날’은 ‘made in japan’이더라. “엥? 뭐자?” 그렇다면 나는 ‘무늬만 국산’인 연필깎이를 쓴 셈인가? 우리나라는 연필깎이 속날조차 못 벼리는가?
나는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낫으로 풀을 벤다. 낫만큼은 ‘조선낫’이 으뜸이다. 일본낫은 힘도 없고 잘 부러진다. 일본낫은 갈아서 쓰지도 못 한다. 호미도 ‘조선호미’가 훌륭하다. 그런데 낫이며 호미를 갈 숫돌은 ‘국산 숫돌’이 참으로 후지다. 국산 숫돌은 2000∼3000원이면 사고, 일본 숫돌은 25000∼30000원 값이다. ‘후진’ 국산 숫돌만 쓰다가 외려 낫날을 버릴 듯하다고 느껴서 푸념하던 어느 날, 면소재지 철물점 아지매가 한말씀 한다. “아이구 작가님, 값은 일본것이 쪼깨 비싸지만, 일본 숫돌을 써보면 아주 다르당께요.”
부엌칼과 가위를 국산 숫돌로 갈다가 날을 버린 적이 있다. 일본 숫돌로 칼을 간 뒤로는 부엌칼날이 잘 선다. 낫과 호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꾸밈머리에 쏟아붓는 돈 가운데 1/100000쯤을 ‘국산 숫돌 거듭나기(개량개선)’에 쓸 수 있을까? 부디 써주기를 빈다. 작은 곳부터 하나씩 가다듬고 고칠 수 있기를 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는 이제 접어야지 싶다. “우리 살림에 우리 돈과 품과 마음을 기울여서 가꾸고 일구자!” 같은 말마디로 살며시 바꾸어야지 싶다. 빼어난 조선낫과 조선호미를 벼린 옛사람처럼, 모나미 볼펜도 국산 연필과 숫돌도, 숱한 살림살이도, 나라에서 조금조금 이바지해서 하나하나 꽃피울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