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7.7.

노래책시렁 346


《주민등록》

 하일

 민음사

 1985.4.15.



  생각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말씀하는 분이 곧잘 있는데, ‘눈치보기’ 아닌 ‘눈길보기’를 하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생각을 밝히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눈길이 아닌 눈치를 볼 적에는 생각도 마음도 느낌도 뜻도 못 밝히거나 가리거나 감추거나 꾸밉니다.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없기에, 뒷북으로 말을 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말을 터뜨린다면, 이 말을 고스란히 옮기면서 하나하나 누릴 적에 저절로 노래로 피어납니다. 사랑이 먼발치에 없듯, 노래도 먼발치에는 없습니다. 살림을 우리 손으로 스스럼없이 일구며 즐겁듯, 글도 노래도 우리 깜냥껏 두런두런 부를 적에 아름답습니다. 《주민등록》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 노래책입니다. 이런 노래책이 진작 나온 적 있어서 놀라고, 이런 노래책이 더 읽히지 않아서 놀랍습니다. 삶을 찾고 살피며 노래하는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거나 파묻히고, 겉으로 훑는 허울에 너스레에 탈춤이 판치는 나라입니다. ‘시’도 ‘문학’도 ‘예술’도 안 해야 노래를 부릅니다. ‘시·문학·예술’에 ‘문화·교육·K’를 붙이는 모든 곳에는 겉치레가 넘실거립니다. 놀이는 누가 가르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놉니다. 노래는 누가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불러야 노래입니다.


ㅅㄴㄹ


다섯 명 가족 다 뉘어도 평 반이면 된다. 가구같이 하나님 서 계시리라 믿으며, 부엌 안에 하나님 들어오시리라 믿으며(밥과 반찬 주시니 항상 감사합니다). 아내도 나를 믿는다. 내일은 방세를 낼 것이라 믿으며, 내일은 쌀을 사 올 것이라 믿으며, 아내의 믿음은 참 나를 유능하게 만든다. 아이들의 기도는 참 나를 유능하게 만든다. (유능할 뿐/12쪽)


신문 방송에서 믿을 건 광고뿐이다, 아니다, 하고 때로는 다투었지. 때로는 다투며 새벽까지 소주를 나누어 마시다가, 교회의 잠긴 門 밖에서 유행가를 불렀지. 요즈음 잘 팔리는 게 예수냐? 아니면 그리스도냐? 서로 묻기도 했었지. (동행/28쪽)


부산 시립도서관에서 83년도 아동도서목록을 뒤적이다가, 등장하는 영웅들을 세어 보니 83명이었다. 그 중 우리나라 사람은 53명으로 전체의 60%였고 60&를 다시 유형별로 다시 분류해서 장군이 17명(32%) 소위 예술가 3명(약 6%)이었다. 우리나라는 영웅 많구나. 영웅이 많구나.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다. 그럴까? 하며 집으로 왔는데 다섯 살 큰딸년이 “아빠, 장군은 별을 달아야지요? 그라마 이순신 장군은 별이 몇 개였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때는 장군들이 별을 안 달았어요” 했더니 큰딸년도 둘째딸년도 한참 고개를 갸우뚱한 후 “아빠 거짓말” 하며 내 뺨을 때렸다. (별 이야기/4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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