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책집마실


날갯길은 노랗게 (2022.12.7.)

― 광주 〈문학서점〉



  아름다운 책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오늘 하루를 아름살림으로 가꾸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예전에 지은 아름책부터 사라지고 우리 이웃이 새록새록 아름다이 짓는 책이 나란히 사라집니다.


  사라지고 난 아름다운 책을 뒤늦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이 아닌 내가 아름답지 않게 살아가느라 잊거나 잃은 아름책을 새롭게 보듬어서 여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책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자꾸자꾸 ‘얕은책’에 얽매일 수 있습니다. 둘레에서 많이 읽으니까 따라서 읽을 수 있고, 종이(졸업장·자격증)를 거머쥐려고 아름책 아닌 얕은책을 달달 외울 수 있어요.


  우리가 오늘 맞이하는 이 나라는 바로 우리가 스스로 일군 모습입니다. 남이 이렇게 일구지 않습니다. 우리가 손수 일군 모습이 나라요 마을이요 보금자리입니다. 우리가 온하루를 오롯이 사랑으로 지을 적에 사랑 아닌 티끌이나 먼지가 태어나지 않아요. 우리가 사랑을 등진 채 돈벌이·이름벌이·힘벌이에 마음을 쏟은 터라 온나라가 얄궂은 모습으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광주로 나온 길에 한참 걷다가 〈문학서점〉 앞을 스칩니다. 여기에도 책집이 있구나 하고 느끼며 지나치다가 돌아옵니다. 다른 책집을 들르려다가 만났으나, 이곳을 먼저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아름빛을 바라본다면 아름빛을 품을 길을 헤아립니다. 아름빛을 안 본다면 아름빛이 아닌 얕은길이나 허튼길에 휩쓸립니다. 사랑빛을 마주한다면 사랑빛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그려요. 사랑빛을 안 보기에 사랑빛이 아닌 굴레나 수렁에 스스로 잠기고 맙니다.


  숲을 사랑하면 ‘숲사랑’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열 만합니다. 또는 ‘숲을’이나 ‘숲으로’나 ‘숲에서’나 ‘숲은’이나 ‘숲이’나 ‘숲답게’나 ‘숲처럼’이나 ‘숲같이’처럼 말끝을 찬찬히 살리는 길을 펴도 어울려요. 숲을 보고, 숲을 담고, 숲을 펴는 하루를 열면서 마음을 보고 담고 펴는 삶을 누리는 첫길입니다.


  숲을 사랑한다면서 ‘숲’이나 ‘사랑’이란 낱말을 안 쓰면 허울이더군요. 눈속임이에요. 책읽기란, 글씨에 담을 마음씨를 새기면서 이 푸른별에 꽃씨를 심는 솜씨를 가꾸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아무 말이나 안 하고, 아무 글이나 안 읽는 몸짓이어야 책읽기입니다. 사랑할 말을 펴고, 사랑스레 글을 읽을 줄 아는 ‘나(참나)’로 살아가기에 비로소 아름길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오래오래 가면서 찬찬히 스미겠지요. 어떻게 쓰든 안 나쁩니다. 즐겁게 쓰면 될 일입니다.


ㅅㄴㄹ


《人間敎育の最重點 環境敎育論》(松永嘉一, 玉川學園出版部, 1931.5.3.)

《인문계 고등학교 표준 역사 부도》(김성근·손상렬, 교육출판사, 1967.10.첫/1977.1.10.재판)

《자연출산법》(甲田光雄/김기준 옮김, 홍익재, 1998.5.30.)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박근혜, 남송, 1993.10.30.첫/1994.8.6.7벌)

《동아 어린이 문고 100 전우치전》(장수철 엮음, 동아출판사, 1990.7.5.)

《충청남도 민담》(최운식 엮음, 집문당, 1980.10.30.)

《성악인을 위한 독일어 딕션》(조상현·조길자 엮음, 수문당, 1980.11.25.)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고종석, 개마고원, 2007.7.16.첫/2007.12.5.3벌)

《문자 이야기》(앤드류 로빈슨/박재욱 옮김, 사계절, 2003.10.29.)

《韓國 書誌學》(천혜봉, 민음사, 1991.9.14.첫/1995.11.10.)

《女苑 '79年 6月號 別冊附錄 2 全身 요가》(김재원 엮음, 전병희·장명희 모델, 고명진 사진, 여원문화사, 1979.6.1.)

《STAR TREK book one NEW FRONTIER》(Peter David, Poket Books, 1997.)

《오월길 컬러링북》(5·18기념재단, 2017.1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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