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명절 2022.9.5.달.



봄에 돌아와서 일찍 태어나고 날갯힘을 야물게 북돋운 제비는 이제 너른바다를 가르려고 떠났어. 나중에 태어나고 한창 날갯힘을 북돋우는 제비는 아직 너희 둘레에 남아서 바지런히 하늘빛을 먹는단다. 철이 바뀔 적에는 바람이 바뀌어. 바뀌는 철바람 가운데 여러 날 쉬잖고 바다를 누빌 첫날을 고르면서 제비무리는 북적북적 모인단다. 너희 사람들은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던데, 그날 왜 무엇을 하려는 마음이니? 삶을 짓는 슬기로운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 춤노래잔치를 벌이는 마음이니? 그냥 때맞춰 서울을 떠나 시골로 부릉부릉 몰려가는 길이니? 한 해를 아우르면서 여는 끝걸음·첫걸음이 맞물리는 겨울을 기리는 설날이라면, 한 해를 넉넉히 살아내어 추위·더위 고루 품어낸 가을을 기리는 한가위일 테지. 두 날은 밝철(밝은철)이야. 무엇을 하며 걸어왔는지 돌아보고서, 무엇을 하며 날아오를지 그리려는 ‘철눈’을 새삼스레 추슬러서 뜨려는 날이거든. 달빛에 눈이 멀지 말고, 늘 가득한 별빛에 눈망울을 맞추렴. 낮을 따뜻하게 북돋우는 해가 밤에도 이 푸른별 건너쪽을 따뜻하게 북돋우는 줄을 한가위 달빛으로 헤아리렴. 네가 보는 쪽에서 해가 질 때면, 너랑 엇갈리는 저 너머에서는 해가 뜨지. 해는 이 푸른별을 고루 비추기에 너도 저 너머도 나란히 따스하면서 아늑할 수 있단다. 일하거나 놀고 나서 쉬며 잠들고, 쉬며 잠들다가 새로 일하거나 놀지. 돌아가는 하루에 따라 삶이 자라나고 생각이 피어나고 이야기가 솟아나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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