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전멸 2023.5.31.물.



너희가 바라보지 않더라도 풀이 돋고 꽃이 피고 나무가 큰다고 여길 수 있어. 아니, 너희가 안 보고 안 느끼더라도 풀꽃나무는 저절로 자란다고 보면서 아예 잊을 수 있어. 아니, 풀꽃나무가 어찌 있거나 숲이 어떠한지 그냥 모르거나 잊을 수 있어. 개구리에 두꺼비가 왜 줄거나 사라질까? 맹꽁이에 도마뱀이 왜 자취를 감출까? ‘이름을 붙이고서 곁에 둔 사람들’이 어느새 잊는걸. 이름을 붙여서 부를 만큼 마음을 기울이고 나누더니, 이제는 이름을 잊거나 처음부터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풀꽃나무·숲·개구리·맹꽁이에 새·곰·토끼·이리 삶터를 모두 밀어내거나 짓밟거나 들쑤신단다. 어느 나무가 “내 땅이오!” 하며 ‘땅문서’를 내미니? 너희는 이 별에 금을 긋고서 돈으로 사고팔 뿐 아니라, 나무를 값을 매겨 사고팔더구나. 그런데, 목숨을 사고팔아도 될까? 너희 땅이니 아니니 금을 긋고 다투며 돈에 홀려도 될까? 이름을 잊고 생각을 버리니, 너희 곁에서 숱한 숨결이 싹쓸이(전멸)로 떠난단다. 잘 봐. 너희는 나무이름을 잊고서 자동차이름·폭탄이름을 알더라. 너희는 ‘개구리·이름·풀’ 이름을 등지고서 ‘정치꾼·연예인’ 이름을 아는구나. 흙은 모르면서 인터넷을 들여다보는구나. 바람을 모르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머리에 담는구나. 별빛이 흐르는 길을 잊어가면, 사람은 별누리(은하계)에서 잊혀가겠지. 풀씨가 날아가는 길을 망가뜨리면, 사람도 이내 무너지겠지. 해를 반기기에 해님이라는 숨결이 너희 온몸을 감돌면서 누구나 아름답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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