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5.30.

수다꽃, 내멋대로 43 88만원세대



  어릴적에 골목이나 너른터에서 동무들하고 뛰놀다가 갑자기 우르르 서로 무리를 지으며 부른다. “종규야! 이리 와!” 이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고, 저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다. 둘로 나눈 무리는 한 사람을 더 늘리려고 용을 쓴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드디어 한마디를 터뜨린다. “난 어디에도 못 들어가겠어! 둘 다 동무들이잖아!”


  ‘그냥 놀 뿐’이라지만, 줄다리기나 오징어나 콩주머니를 하며 끝없이 짝을 바꾸어서 어울리는 놀이가 아닌, 처음부터 무리를 갈라서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로 다툰다면, 어디에도 안 끼었다. 뒤로 홱 돌아서서 달아난다. 쌩 하고 달아나는데, 동무들은 ‘달리기’를 하자는 줄 여겨 어느새 무리가 풀어지고 달음박질놀이로 바뀐다. 그러니까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한쪽이 너무 끌려가면, 힘세게 끌어당기는 쪽에서 한두 아이가 어느새 ‘끌려가는 쪽’으로 옮겨와서 힘을 맞춘다.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팽팽하게 맞물려서 땀빼는 몸짓이 신날 뿐이다.


  그저 온마을 모든 아이가 스스럼없이 고샅이나 골목에 나와서 멀뚱히 해바라기를 하다가 하나둘 모여서 이 놀이를 하고 저 놀이를 하며 그 놀이로 건너가던 소꿉자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태껏 온나라 아이들은 ‘집밖이되 마을’에서 뛰놀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얼른 달려가서 심부름을 하고 집일을 도왔다. 심부름과 집일을 마치면 부리나케 소꿉자리로 달려와서 다시 놀았다. 놀다가 일하고, 일하다가 놀고, 다시 놀다가 일하는 하루가 사라진 자리에는 늪(입시지옥)이 또아리를 틀면서 ‘놀이’하고 ‘일’뿐 아니라 ‘빈터’에다가 ‘집’과 ‘마을’까지 빛이 바래는구나 싶다.


  우리는 왜 ‘어느 쪽’에 서야 할까? 어느 해에 태어났기에 ‘태어난해’라는 또래로 묶여야 할까? 어느 해에 무슨 배움터(학교)를 들어갔기에 ‘학번’이라는 금을 갈라야 할까?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살아갈 뿐, ‘나이·주민등록번호·학번·군번’으로 갈라야 할 까닭이 없다.


  ‘주민등록번호’는 우리나라에만 있다지. 온나라 사람을 옥죄려고 박정희 때에 생겼고, 주민등록번호를 매기면서 열손가락 손그림을 몽땅 딴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본한겨레(재일조선인)를 억누르면서 ‘열손그림따기(십지지문채취)’를 마구잡이로 하다가 이제는 아예 안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열아홉 살 푸름이가 처음 주민등록증을 받아야 할 적에 ‘열손그림따기’를 해야 한다. 푸른별에서 꼭 우리나라만 하는 사슬살이인데, 아직도 이 사슬질을 우리 스스로 못 없앤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그쪽이든 똑같지 않나. 저마다 옳다고 외치지만 ‘갈라침·금긋기(분단·분열·분리)’일 뿐이고, 이 무리짓기부터 ‘따돌림(차별)’이 싹튼다고 느낀다. 2007년이던가, 《88만 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고, 둘레에서 이 책을 추켜세우던 그즈음, 나는 어쩐지 코웃음이 나왔다. “무슨 얼어죽을 88만 원?” 그무렵 내 한달벌이는 ‘88만 원’은커녕 ‘50만 원’도 ‘30만 원’도 아니었다. 때로는 ‘10만 원’으로 볼볼 기었다. ‘그들(지식인)’이 금긋는 ‘88만 원 세대’라는 말은 고약했다. 왜 이런 ‘무리짓기(세대갈등)’를 일삼아야 하는가? 일부러 틀(프레임)을 만들어서, 왜 자꾸 갈라치기(이간질)를 하는가? 이 틀로 이 나라에 새롭게 불길(분노)을 일으키고, ‘분노 프레임’으로 강단·강의를 차지하면서 ‘새길’이 아닌 ‘불길(분노)’로 금긋기(이분법에 따른 사회분열)로 치닫겠구나 싶었다.


  《88만 원 세대》는 ‘나쁜책’일 수는 없다. 이 나라가 바뀌기를 바라는 뜻을 차곡차곡 여미었다고 느낀다. 다만, 글쓴이 스스로 삶자리나 밑바닥을 몸으로 맞아들이지는 않고서 붓끝만 휘날렸지 싶다. 나는 2007년부터 스무 해쯤 지난 2026년 무렵에 60만 원 즈음으로 한달살이를 한다. 이런 돈으로 어찌 먹고사느냐고 궁금해하는 분한테 “걷고, 자전거를 달리고, 또 걷고, 또 자전거를 달립니다. 일은 그저 손으로 하고, 짐은 그저 등으로 져서 나릅니다.” 하고 들려준다.


  많이 벌어서 많이 써야 삶이 즐겁다고 여기는 눈도 있겠지. 적게 벌어서 적게 써도 삶이 즐겁다고 여기는 눈도 있겠고. 안 벌고 안 써도 삶이 즐겁다고 여기는 눈도 있을 테고.


  두 아이를 돌보면서 늘 지켜본다. 아이들은 돈을 벌지 않지만, 한 손을 거들고 두 손을 돕는 매무새가 반가우면서 고맙다. 같이 거닐면서 수다를 떨기에 새롭게 배우고, 함께 쉬면서 하늘바라기와 풀바라기와 나비바라기를 하기에 새록새록 깨닫는다.


  우리 삶을 돈(경제)을 잣대로 삼아서 풀거나 다루면서 나라를 나무랄 수 있다. 이런 글과 목소리도 있을 노릇이다. 그렇지만 너무 돈에 기운다. 게다가 ‘돈’과 ‘가난’과 ‘가멸’이 어떠한지 ‘온몸으로 살아낸’ 이야기는 너무 드물다. 살림돈이 매우 적기에 ‘못살’거나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다. 살림돈이 매우 많기에 ‘잘살’거나 걱정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88만 원 세대》는 서울에서 맴돈다. 기껏해야 서울곁(수도권)을 슬쩍 건드린다. 부산과 대전과 광주뿐 아니라, 순천과 나주와 영양과 영동과 고성과 거창과 진주 같은 곳을 건드리거나 다가가거나 스며들 틈이 없구나 싶다.


  어느 해에 최영미 시인이 ‘근로장려금’을 받아야 했다면서 징징거린 적이 있다. 난 최영미 시인이 ‘징징이’라고 느꼈다. 〈네모네모 스폰지밥〉에 나오는 ‘징징이’ 같았다. 가난이라는 밑바닥에 이르지 않고서야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지 못 할까. 가난한 사람을 가엾거나 불쌍하거나 딱하게 여기면 될까. 스스로 가난집과 이웃하거나 함께하는 길을 펼 수는 없을까.


  “너와 함께 88만 원으로 살게”라든지 “근로장려금을 해마다 받는 이웃과 나란히” 같은 마음으로 붓끝을 펴려고 한다면, 줄거리도 이야기도 사뭇 다르리라. 줄다리기를 하다가 “끌려가는 쪽으로 얼른 달려가서 돕는 아이들”마냥, 그냥 여느때부터 “나도 88만 원만으로 한 달을 살게. 88만 원을 넘는 웃돈은 모두 이웃한테 나눌게.” 하는 삶을 지내고서, 이러한 삶을 땀내음 나게 글로 쓸 수 있기를 빈다.

  우리는 《즐거운 불편》(후쿠오카 켄세이) 같은 책을 읽고서 생각해야지 싶다. 남들(사회)이 보면 힘든(불편) 길이지만, 스스로 즐겁게 손과 발과 온몸과 사랑을 기울여서 차근차근 하루하루 살아내 보고서야, 이 삶을 글로 옮기고, 이렇게 담아낸 글을 함께 새기고, 이러면서 앞으로 함께 짓고 싶은 새터를 이야기하면 즐겁지 않을까.


  《즐거운 불편》이라는 놀랍고 아름다운 책은 2004년에 처음 나왔다. 나는 이 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서, 틈나는 대로 장만해서 이웃한테 건네었다. 《즐거운 불편》을 읽은 적잖은 이웃은 “나더러 이렇게 살라고? 난 이렇게 못 살아!” 같은 푸념과 하소연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쓴 사람처럼 살라는 뜻으로 건네지 않았다. 이러한 길이 있고, 이렇게 손수 마주하는 삶을 하나씩 늘리면 이곳에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살림살이를 환하게 알아볼 수 있다고 다시 이야기했다.


  이러다가 2009년에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을 손수 써냈다. 《즐거운 불편》이 다룬 여러 글감 가운데 하나인 ‘자전거’만으로도 우리가 스스로 오늘 이곳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여미었지.


  인천과 서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리면 ‘일반전철’보다 빠르다. 때로는 ‘급행전철’보다도 빠르다. ‘로드바이크’가 아닌 ‘생활자전거’로 이렇게 달릴 수 있다. 나는 늘 몸소 이렇게 다녔다.


  그냥그냥 몸으로 해보는 일을 글로 쓴다. 언제나 손수 가꾸거나 가다듬는 하루를 글로 옮긴다. 목소리를 내기 앞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을에서 조용히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혼길을 걷는다. 몸에도 마음에도 날개를 달면서 뚜벅뚜벅 걷는다. 먼길을 갈 적에는 버스를 얻어탄다(버스기사님이 고작 1700원으로 태워 주니까). 버스에서 내리면 하늘빛을 머금으며 다시 걷는다. 걷다가 멈추어 들꽃을 본다. 들꽃을 보다가 바람길을 읽는다. 이내 구름꽃을 느낀다. 나는 ‘틀·무리(프레임·세대)’에 깃들 마음이 없다. 언제나 ‘아이’하고 도란도란 어울리는 숲길을 걷고 싶다. ‘곁님’하고 ‘나’부터 우리 보금자리를 숲빛으로 가꾸는 길을 가려는 마음이다. 나는 아무 또래(세대)가 아니다. 그저 ‘숲사람’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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