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글쓰기 / 숲노래 글꽃


누구나 글꽃

4 풀꽃나무처럼



  사람이 가지치기를 할 적에 나무가 반길까요?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꽃줄기를 꺾으면 꽃이 좋아할까요? 어떻겠습니까? 멀쩡히 있는 풀밭을 마구 밟는다든지 삽차로 까뒤집으면 풀이 기뻐할까요? 우리는 사람이라는 몸을 입었습니다만, “내가 나무라면? 내가 꽃이라면? 내가 풀이라면?”처럼 마음으로 스며들어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적잖은 어른들은 잿집(아파트)을 마련해서 살아가는데, 골목집(구도심·원도심)을 ‘안 깨끗하다’거나 ‘어수선하다·어지럽다’ 같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집 한 채가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넘으면 ‘뒤떨어졌다(낙후)’ 같은 말로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팔만대장경’을 품은 절집은 뒤떨어졌을까요? 빛살(전기)이 없더라도 즈믄해(1000년) 넘게 나무판을 정갈하게 지켜준 ‘나무와 흙과 돌과 짚으로 지은 집’은 얼른 허물어 잿더미(시멘트)로 다시 지어야 할까요?


  숲에는 푸른지붕집(청와대)이 없습니다. 숲에는 싸울아비(군인)가 없고, 싸움날개(전투기)가 없습니다. 숲에는 풀꽃나무가 있고, 풀벌레가 살고, 벌나비가 춤추고, 곰에 범에 토끼에 늑대에 오소리에 숱한 짐승이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어느 숨결도 ‘금(구역)’을 긋지 않아요.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알맞게 누리고 나누면서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이 멋모르고 건드리거나 파헤치기에 숲이 죽거나 그만 불타고 말아요. 숲은 사랑이 없이 메마른 사람들이 함부로 망가뜨리려는 탓에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집니다.



 ㄱ. 꽃을 함부로 꺾는다면, 사람으로서는 목을 함부로 자르는 셈입니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친다면, 사람으로서는 팔다리를 함부로 자르는 셈입니다. 들풀을 함부로 뽑거나 갈아엎으면, 어린이를 마구 밟거나 때리는 셈입니다.


 ㄴ. 모든 풀꽃나무는 다 다른 풀과 꽃과 나무라는 결을 고스란히 이으면서 숲빛으로 피어나고 어우러질 적에 아름답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숨결이라는 빛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겁게 펼 적에 사람답고 사랑스럽습니다.


 ㄷ. 남보다 좋아 보이도록 글을 매만진다면, 어느 글이든 글빛이 사라집니다. 남이 쓴 글보다 돋보이도록 글을 꾸민다면, 이런 글은 이미 글결을 잃어 ‘글시늉(겉은 글이되 정작 글이 아닌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ㄹ. 풀을 푸르게 품듯 글 한 줄을 품습니다. 꽃을 곱게 고루 곰곰이 고요히 보듯 글 두 줄을 씁니다. 나무 한 그루를 한 아름 안으며 서로 숨결을 나누듯 글 석 줄을 씁니다.



  풀꽃나무처럼 씁니다. 풀빛으로 쓰고, 꽃빛으로 쓰고, 나무빛으로 씁니다. ‘비유법·은유법·활유법·직유법·의인법·대유법·강조법·변화법’ 같은 꾸밈짓(수사법)은 꾸깃꾸깃 접어서 치울 노릇입니다. 글도 말도 얼굴도 몸매도 땅도 집도 옷도 모든 길도 ‘꾸미면 꾸밀’수록 겉치레로 기웁니다. 꾸미지 말고 가꿀 줄 알 노릇이고, 풀꽃나무 숨결을 그대로 맞아들여 사랑을 노래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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