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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 - 이순자 유고 시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평점 :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1.
노래책시렁 290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
이순자
휴머니스트
2022.5.9.
구멍난 옷을 기웁니다. 구멍난 줄 모르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알아차리고는 “아, 기워야 하는 줄 잊었네.” 하고 읊고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기웁니다. 기우다가 밥을 차려야 하거나 다른 집안일을 하면 바느질감을 내려놓습니다. 이러다가 기움질을 잊고, 나중에 떠오르면 다시 기워요. 옷에 때가 탔으니 빨래를 하고, 바닥에 부스러기가 내려앉으니 훔칩니다. 아이들은 곁에서 이모저모 지켜보다가 소꿉을 놀더니, 어느새 스스로 밥을 짓고 비질에 걸레질을 하고 짐도 척척 나릅니다.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를 둘레에서 퍽 추키기에 장만해서 읽었는데, 한 해 즈음 자리맡에 놓고서 잊었습니다. 요새는 숱한 글바치가 글빛을 잊고 잃었다지요. 꿈은 우리한테 다시 찾아오지 않아요. 왜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그릴 때에만 꿈은 곧바로 눈앞에서 피어납니다. 우리가 안 그리는 꿈은 죽어도 안 찾아옵니다. 개를 그리니 개꿈이고, 허방을 놓으니 헛꿈입니다. 사랑으로 그리면 누구나 사랑꿈을 이뤄요. 허술한 글은 왜 쏟아질까요? ‘팔릴 글’을 쳐다보느라 허수룩합니다. 빛나는 글은 왜 드물까요? 스스로 하루를 빛내면 모든 삶은 시나브로 별로 돋아나고 글로 가만히 옮아가는데, 살림을 등지는 탓입니다.
나도 그랬다 / 거울 앞에서 눈 흘기며 / 족집게로 새치 뽑아 / 거울에 붙여놓고 / 내 신산한 세월 같아 떼지 못했다 // 내가 새치를 뽑을 때 / 단발머리 소녀였던 딸아이 / 그새 사십 줄에 들어서 / 엄마가 하던 짓 그대로 한다 (새치/46쪽)
호스피스 병동 첫 봉사 날 / ―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는 / 암 병동에서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 고르고 골라도 마땅한 인사말 생각나지 않아 / 무조건 병실 문 열고 들어가 / 슬며시 손부터 잡았다 (안녕히 주무세요/18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