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들어 꽃
곽재구 / 미래사 / 1992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5.11.

노래책시렁 306


《전장포 아리랑》

 곽재구

 민음사

 1985.10.15.



  우리나라 글꾼이 예전에 남겼거나 요새 적는 글을 보면 어쩐지 술타령이 잦고, 글돌이(남성작가)는 술어미(작부)를 옆에 끼기 일쑤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로라하는 이름이 있는 노래꾼(시인)이며 얘기꾼(소설가)이 그토록 노닥술집(유흥주점)을 즐기고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글에 글쓴이 모든 삶을 담아내는 길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삶이 아닌 굴레’로 굴러가는 모습만 되풀이해서 비춘다면, 이 글은 이 땅에 어떤 씨앗으로 퍼질까요? 《전장포 아리랑》을 되읽었습니다. “받들어 총”을 “받들어 꽃”으로 바꾼다면 얼핏 바뀔 듯싶습니다만, 시늉일 뿐입니다. 총칼(전쟁무기)은 받들어서 우두머리(권력자)를 섬기는 길로 치닫습니다. 풀꽃과 푸나무는 받들지도 섬기지도 않을 이웃입니다. 풀꽃을 보려면 맨발에 맨손으로 흙바닥에 폭 앉거나 무릎을 꿇을 노릇이요, 푸나무를 보려면 맨발에 맨손으로 나무타기를 하고서 새 곁에서 휘파람을 불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계집애는 돈만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꿈빛을 품고서 이 땅에 태어났으니, 부디 아이 곁에 쪼그려앉아 보셔요. 계집애는 사랑바라기라는 사람길을 일구려고 태어났으니, 모쪼록 ‘꽃돈(상금)’을 흩뿌리려던 철없던 옛짓에서 거듭나셨기를 빕니다.


ㅅㄴㄹ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 아름을 골라 주며 /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받들어 꽃/20쪽)


문학복권 상금을 타고 / 제일 먼저 옛 거리의 골목에 돌아가고 싶었다 / 주머니에는 오천원 지폐 80장이 들어 있고 / 그래 가능하다면 바퀴벌레처럼 / 바라크 틈 속에 숨어 사는 계집애들의 출입구에 / 오천원 지폐 한 장씩 걸어 주고 / 종을 울리고 싶었다 / 야 계집애들아 나와라 / 나와서 군밤도 사 먹고 호박죽도 사 먹고 / 주간지 생리대 바둑껌 콘돔 다 사가라 사가라 (그해 겨울/13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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