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2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꽃/숲노래 만화책 2023.3.16.

사랑없는 곳에는 돈·이름·힘만


《이매진 2》

 마키무라 사토루

 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1.8.25.



  《이매진 2》(마키무라 사토루/서미경 옮김, 서울문화사, 2001)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첫무렵에 한글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로 치면 2020년대에 볼 만한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라 할 텐데, 일본에서는 1980∼90년대에 이미 치르거나 겪으면서 훅 지나간 모습이나 일이나 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으로 접어들 즈음까지 여느 배움터(학교)에서 길잡이(교사)가 아이들을 버젓이 두들겨팼습니다. 이무렵에는 돈자루(촌지)도 아직 꽤 춤추었습니다. 그런데 몽둥이질이나 돈자루는 2020년대 즈음에는 ‘배움터에서는 사라진 듯하되, 나라 곳곳에서는 몰래 일어나거나 불거지’기 일쑤입니다.


  길잡이나 늙은이(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닌 놈팡이)한테 으레 얻어맞으며 돈을 빼앗기던 작은이는 ‘나도 힘을 키워 남을 때리거나 남한테서 돈을 우려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맞는 쪽도 때리는 쪽도 없이 어깨동무하는 새나라를 이루면서, 모든 멍울하고 응어리를 씻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숱하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겼대서, 그놈들을 두들겨패거나 그놈들 주머니를 터는 앙갚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모든 앙갚음은 늘 앙갚음을 심고 낳아요. 주먹질은 늘 주먹질을 심고 낳듯, 되갚음을 그리면 늘 되갚음을 심고 낳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얻어터지거나 빼앗긴 자리에 선 작은이는 ‘미움갚기(권선징악)’이 아닌 ‘사랑하기’를 그립니다.


  《이매진》을 읽으면, 여러 자리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어머니하고 딸이 나와요. 홀로 어린 딸을 돌보면서 스스로 일순이(사업가)로 서려는 어머니가 있고, 고리타분한 틀에 마음이 갇힌 아버지가 나옵니다. 힘겹고 벅찬 홀로서기이지만, 어린 딸아이한테 “핏줄잇기 아닌 살림짓기를 보여주고 물려주고픈 마음”인 어머니가 줄거리를 이끕니다. ‘어머니 사랑’을 누렸으나 ‘아버지 사랑’은 모르는 아이가 ‘여러 사내’를 마주하면서 ‘왜 굳이 사람은 순이돌이(남녀)로 따로 있을까?’를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홀로서기란 길을 어머니하고 다르게 나아가려는 딸아이가 다른 줄거리를 이끌어요.


  엉성하거나 어설픈 숱한 사내는 저마다 다른 줄거리를 이끌고, 참하거나 착한 사내도 곧잘 나와서 다른 줄거리를 이끕니다. 빛나는 마음과 눈길인 사람들이 있고, 맹하거나 덜된 마음과 눈길인 사람들이 있어요.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보기로 해요. 저이는 어떻게 잿더미에서도 빛나는 마음과 눈길일까요? 저이는 어떻게 배부르거나 가멸찬 집안에서도 맹하거나 덜된 마음과 눈길일까요?


  돈이 많은 집안이기에 사랑을 알지 않아요. 돈이 없는 집안이기에 사랑을 모르지 않습니다. 주먹을 휘두르기에 사랑을 빼앗지 못 합니다. 주먹힘이 없대서 사랑을 빼앗기거나 잃지 않아요. 이름을 드날리기에 사랑을 누리지 않습니다. 이름값이 없다지만 사랑을 아름답고 즐거이 나누고 누려요.


  사랑없는 곳에는 돈·이름·힘만 판칩니다. 사랑을 모르거나 등지거나 짓밟는 이나 무리는 언제나 돈·이름·힘만 외칩니다. 이른바 ‘경제개발·경제발전’도 사랑을 모르거나 등지거나 짓밟는 놈팡이가 들먹이는 말입니다. 이른바 ‘자기개발·자기계발’도 사랑하고 동떨어진 놈이 읊는 말입니다.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개발’ 같은 허울스러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성취·성공·성과’를 입에 담지 않습니다. 잘 보셔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겉모습을 안 쳐다보고, 이름값에 휩쓸리지 않고, 힘이 여리고 돈이 없어도 늘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홀가분합니다.


  배불리 살고 싶으면 배불리 살아야겠지요. 다만, 배불리 사는 곳에는 아무런 사랑이 싹트거나 자라지 않습니다. 말끔하거나 번듯하게 꾸미고 싶으면 꾸며야겠지요. 그저, 말끔하거나 번듯하게 꾸미는 곳에는 풀 한 포기 돋지 못 할 뿐 아니라, 새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을 뿐입니다.


ㅅㄴㄹ


“평소에 안 보는 코너를 둘러봤어요. 서점은 참 즐거워요.” (64쪽)


“난 내 인생을 완전히 살 거야. 그걸 애한테 보여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71쪽)


“엄만 엄마 우산 쓴다.” “유우는 유우 우산.” “우리는 다른 인간이지만 인연이 있어서 같이 사는 거야.” (74쪽)


“이상하지. 그녀를 만나고부터 만나는 사람이 달라져.” “그건 주위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해가는 겁니다.” (87쪽)


“저 남자하고 가정을 꾸렸단 말이지? 미츠코 일생일대의 실수인가?” “아니, 인생 최고의 행운이죠. 나한테 유우를 주었는걸요.” (109쪽)


“내가 연인하고 하고 싶은 건 하녀 놀이가 아냐! 서로가 따뜻하게 자고 말하고 싶다구. 얼굴을 볼 때마다 사랑한다고 느끼고 싶어! 유쾌하게 놀면서 둘이 함께 웃고 싶어!” (135쪽)


#まきむらさとる #イマジン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