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 택배기사님, 큰딸
택배기사님.큰딸 지음 / 어떤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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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2.27.

인문책시렁 284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기사님 글

 서혜미 엮음

 2020.3.2.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기사님, 서혜미, 2020)은 ‘나름이’ 또는 ‘짐꾼’으로 일하는 나날을 적바림한 꾸러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본 한자말 ‘택배’를 그냥 쓰는데, 이 일본말은 “집(宅) + 나르다(配)”을 가리킵니다.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을 그냥그냥 쓰든 말든 대수롭지는 않으나, 우리는 우리말로 우리 이름을 도무지 안 가리키는 나날입니다.


  멧자락에서 짐을 나르는 일꾼한테는 영어로 ‘포터’라 하더군요. 우체국에서 일하거나 부릉부릉 달리며 나르는 일꾼한테는 한자말로 ‘배달부’라 해요. 우리 곁에서 짐을 나르는 일꾼한테는 먼저 수수하게 ‘나름이·짐꾼’이라 하면 되고,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새말을 여밀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라면 ‘택배·운반·운송·배달·집배’뿐 아니라 ‘포터·택배기사·운반원·운송인·배달부·배달원·집배원’을 아울러 ‘짐나래’나 ‘짐날개’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짐에 나래(날개)를 달고서 띄우거나 잇거나 나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짐을 잇는 날개는, 둘 사이를 새롭게 맺으면서 땀방울을 주고받는다고 할 만합니다. 짓는 사람하고 누리는 사람 사이에 잇고 나르는 사람이 있어요. 셋이 나란히 즐거울 수 있는 길을 헤아려 ‘나래·날개’ 같은 낱말을 쓰면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을 읽다 보면 술꾼(주취자)한테 시달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문득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새뜸나름이는 으레 밤 한 시 반이나 두 시부터 일을 합니다. 적게 돌린다면 새벽 너덧 시 무렵 일어나서 돌리지요. 밤 한두 시는 술에 절거나 비틀거리는 사람이 해롱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무렵이요, 이들은 이때 ‘짐자전거(새뜸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일부러 발로 차거나 넘어뜨리고 달아나기도 하고, 새뜸을 슬쩍하기도 합니다. 새벽 네 시 무렵까지 술을 퍼마신 이들은 아직 안 연 가게 앞에 웩웩 게우고서 달아나기도 하는데, 가게 쇠문(셔터)을 살짝 들추어 새뜸을 넣으려다가 깜짝 놀라기 일쑤예요.


  밤일을 하는 이뿐 아니라 새벽일을 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술꾼인데, 술로는 어떤 마음도 달랠 수 없습니다. 술이 좋다면 밖에서는 가볍게 마시고서 집으로 돌아가서 마저 마시고 곱게 뻗을 노릇입니다. 아무튼, 짐나래 이야기는 2022년 5월에 ‘어떤책’이라는 곳에서 새로 내놓습니다. 혼책(독립출판)으로 나온 판은 짐꾸러미 빛깔이 고스란히 투박한 짜임새에 ‘누런자루’에 담겼다면, 새판은 하야말갛습니다. 새판도 누런종이로 수수하게 꾸며서 선보이면 한결 남달랐을 텐데 싶습니다.


ㅅㄴㄹ


내 고객도 아닌데 나를 어떻게 자르고 붙여놓을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을 색종이로 보았나. (19쪽)


배송을 가면 스님은 내게 꼭 박카스 2병을 주셨다. 당신 것이 없으시면 절에서 봉양하시는 보살님들께 부탁하셔서 꼭 2병씩 챙겨 주셨다. (21쪽)


자기네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생김도 잘생기고 자식들은 하나같이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그게 다 특정 종교의 힘이라고 했다 … 그러면서 기사님은 우리 교회 교인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저도 괜찮습니다만. (29쪽)


경찰이나 택시운전기사만 주취자를 만날 것 같지만 택배기사도 주취자들에게 시달린다. (42쪽)


회사 규정상 안 된다고 말씀드려도 회사 규정이고 뭐고 노인네는 모른다고 하신다. 자식 같은 이가 끼니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일하는 것 같아 식사하라고 주는 거야 하시는데 … 천국에서 먹는 김밥도 요즘은 천 원에 살 수 없지만 먹지 않아도 괜찮다. 배부르다. (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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