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의 열매 4
히가시모토 토시야 지음, 원성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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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2.26.

아무도 똑같이 앓지 않아



《플라타너스의 열매 4》

 히가시모토 토시야

 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2.12.31.



  《플라타너스의 열매 4》(히가시모토 토시야/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2)은 “아무도 똑같이 앓지 않아” 한 마디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도 안 아픈 사람도 다 다릅니다. 아픈 사람이 다 똑같이 아프지 않아요. 튼튼한 사람도 다 똑같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돌림앓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앓습니다. 이름은 같은 돌림앓이라 하더라도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르게 돌보는 손길이어야 합니다.


  배움터에서 가르치거나 배울 적에도 이와 같아요.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르치더라도,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아이한테 맞추어 다 다르게 들려주고 알려주며 가르쳐야 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보면, 돌봄터(병원)나 배움터(학교)가 똑같은 얼개입니다. 다 다른 사람을 안 쳐다봐요. 그저 똑같은 틀에 가두려 합니다. 사슬터(감옥)조차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르게 일깨워서 잘못씻이를 할 노릇이지만, 참말로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르게 일깨우거나 이끄는 얼거리가 있을까요?


  새삼스럽습니다만, 스승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스승’은 그저 스스로 하는 살림길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참말로 스승이라면, 모든 배움이(제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배움이도 스승이 가르치거나 이끌 수 없어요. 다 다른 배움이는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스승으로서는 “보렴, 너희가 스승이라 일컫는 나(스승)는 이렇게 스스로 배워서 이렇게 스스로 살림을 짓는단다. 너희(제자)는 너희 나름대로 느끼고 보고 배워서 너희 스스로 깨달아서 너희 길을 너희 손으로 지으렴.” 하는 말만 할 수 있습니다.


  돌봄이(의사)란 이름이든, 길잡이(교사)란 이름이든, 어버이(부모)란 이름이든, 우리는 그저 다 다른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다 다르게 말을 하고, 다 다르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앓고 아픈데, 똑같은 돌봄물(약)을 준다면 어찌 될까요? 다 다른 사람한테 모두 똑같이 미리맞기(예방주사)를 밀어붙이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이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사람이란 몸을 입고서 살아간다면,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책’을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고전명작’이란 이름으로 함께 읽는 바보짓을 멈추어야 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책을 읽고서 다 같은 말을 쓴다면, 이곳은 사슬터(감옥)가 단단히 섭니다. 우두머리(권력자)가 바라는 꼴입니다.


  우리는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눈으로 읽을 노릇입니다. 때로는 아름책을 돌려읽을 수 있을 텐데, 어떤 아름책이라 하더라도 ‘똑같이 느낄’ 생각은 그쳐야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 읽고 새겨서, 우리 살림을 짓는 밑자락으로 삼을 노릇이에요.


  그림꽃 《플라타너스의 열매》는 어린돌봄터(소아과병원)에서 마주하는 삶죽음을 다룹니다만, 아프거나 앓는 아이들뿐 아니라, 튼튼한 아이들도, 또 아이 곁에 서는 어른하고 어버이가 어떤 마음하고 몸으로 어우러질 적에 참사랑일까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좋아함(마음끌림)’이 아닌 ‘사랑’을 다루는 줄거리입니다. 이 숨결을 다 다른 우리가 저마다 새롭게 느끼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딱히 그렇게 생각 안 해.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도 있고, 무슨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지. 그뿐이야.” (20쪽)


“병 때문이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뭐 어때? 토모미를 못 견디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겠어.” (47쪽)


‘환자는 하나하나 다른 인간이고, 제각기 다른 가족을 가졌으며 다양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똑같은 병을 두고도 환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지. 그렇기에 의사는 환자 하나하나에 맞춰서 마주할 필요가 있어.’ (131쪽)


“살다 보면 병을 앓거나 다치기도 하고, 사랑을 하면 상처받게 될 때도 있지. 토모미의 병은, 연애나 우정과 연관 지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은 그냥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153쪽)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을 쓰는 건 소아외과의야. 너는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사를 가르는 현장에 서는 건 소아외과의라고.” “그럼 형은 단 한 번이라도 토모미를 진찰해 본 적이 있어? 환자와 마주하고 얘기를 해보지도 않고, 데이터와 차트만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런 소아외과의에게 누가 목숨을 맡길 수 있겠냐고?” (183쪽)


#東元俊哉 #プラタナスの実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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