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차꼬를 2023.2.10.쇠.



네가 무엇을 배우려고 어느 모임에 갔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모임에서 첫자리(1교시)부터 엉망이라면? 넌 첫자리를 하는 동안에 벌떡 일어나서 나오겠니? 두자리(2교시)·석자리(3교시) 지켜보겠니? 넉자리(4교시)·닷자리(5교시)를 그냥 듣거나 너무 지겨워서 배움모임에서 딴짓을 하겠니? 여섯자리(6교시)까지 견디다가 드디어 일곱자리(7교시)에서 박차고 나오겠니? 여덟자리(8교시)까지 들으면 너한테 ‘다 들었다는 자격’을 줄 테니 그냥 있으라고 할 적에 넌 ‘자격’을 얻으려고 눌러앉겠니? 아니면 “한 시간이어도 내가 나답게 나를 가꾸는 데에 쓰겠다!”고 외치면서 “거짓으로 길들여 거짓 자격을 주는 차꼬”를 내가 스스로 뒤집어쓸 마음이 없다고 거듭 외칠 수 있겠니? 돈·이름·힘이나 자격증·졸업장이 하나도 안 나쁘단다. ‘나쁜짓’은 없어. 다루는 마음이 엉클어지거나 비틀리거나 시커멓기에 거짓을 부리거나 사람들을 차꼬에 가두려는 짓이 있지. 다만,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렴. ‘차꼬에 가두려는 짓’이 ‘나쁜짓’이라고 여기지 마. 저렇게 하는 무리를 ‘나쁜놈’으로 여기지 마. ‘좋고 나쁨’으로 가르려 들지 마. 그저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가만 느껴서, “그대는 ○○짓을 하는군요.” 하고 나긋나긋 들려주렴. 거짓말을 하는 이더러 “거짓말을 하니 넌 나빠!” 하고 ‘좋고 나쁨’으로 가르면, 그들이 노리는 대로 ‘좋고 나쁨으로 가르는 싸움’이라는 차꼬에 갇힌단다. 넌 그저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군요.” 하고 말하면 돼. 거짓이니 거짓이라 얘기하고, 참이니 참이라고 말하면 된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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