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 시 쓰기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3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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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너나없이 날아오를 노래님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이오덕

 지식산업사

 1988.10.5.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이오덕, 지식산업사, 1988)라는 책을 처음 만나던 날 온몸으로 번쩍 하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어린이여야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을 다르면서 새롭게 들려주는 말이 “어린이는 모두 노래님(시인)이다”라고 느꼈어요. 어린이 마음을 잊거나 잃으면 ‘어른 아닌 늙은이’요, 어린이 마음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설 줄 알기에 ‘철든 사람’으로서 사랑꽃을 피우는 숨결이 되리라 느껴요.


  어린이를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어린이한테서 배우면 됩니다. 어른은 가르칠 몫이나 자리가 아닌, 배우고 사랑할 몫이자 자리입니다. 어린이는 배우는 사람이 아닌, 어버이를 가르쳐 어른으로 거듭나도록 북돋우는 빛살입니다.


  오늘날 배움터를 보면 하나같이 ‘어린이를 가르치려 듭’니다. 이른바 ‘교육·학습·훈육·양육·훈련·양성·육성’ 따위 일본스런 한자말을 함부로 들먹이잖아요? 이 모든 일본스런 한자말로 밀어대는 짓은 어린이 숨결을 짓밟고 어린이 마음을 망가뜨리고 어린이 넋을 들볶는 사나운 칼부림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살림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모든 삶을 받아들입니다. 스스럼없이 지켜보고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나비처럼 날고 나무처럼 서지요. 어린이는 ‘어른 아닌 늙은이’처럼 ‘돈·이름·힘’ 앞에서 굽실거리지 않습니다. 어린이 마음을 잊다가 잃은 ‘어른 아닌 늙은이’가 언제나 ‘돈·이름·힘’ 앞에서 굽실거려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허울뿐인 늙은이가 참말로 슬기롭고 어질고 참하며 착하고 사랑스레 밝은 어른이라면, 어린이를 안 가르칩니다. 어린이를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하루를 지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른이 아니기에, 자꾸 어린이를 가르치려 듭니다. 어른이 아닌 늙은이인 탓에 철이 안 든 채 자꾸자꾸 어린이를 길들이려 하지요.


  철든 숨결이자 눈빛이라면 아무도 안 가르칩니다. 보셔요. ‘스승’은 가르치는 자리나 몫이 아니에요. 스승은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삶을 누리면서 사랑을 길어올려서 펴는 사람입니다. 스승도 스님도 안 가르쳐요. 그저 곁에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면서 기쁘게 북돋아 ‘어린이가 놀도록 자리를 내어줄’ 뿐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놀도록 마음을 쓰고 보금자리를 가꾸기에 ‘어버이에서 어른이란 이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려고 닦달하면서 배움터(학교·학원)로 몰아세우기에 ‘어른 아닌 늙은이’예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어린이한테 노래짓기(시쓰기)를 안 가르칩니다. 어린이가 저마다 하늘빛으로 노래하는 사랑어린 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고 차근차근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어른 아닌 늙은이’한테 들볶인 나머지 빛살을 잃고 말아 ‘낡은 굴레에 갇힌 딱한 아이들’이 ‘틀박이(기계)처럼 만들어내는 겉발림 동시’가 무엇인지 가만히 보여줍니다.


  노래하기에 어린이입니다. 놀기에 아이예요. 노래하며 놀기에 어린이요, 노래하며 노는 마음을 고스란히 건사하면서 사랑으로 돌보는 어진 숨빛을 밝혀서 든든하게 자라난 사람이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이리하여, 어린이 마음을 고이 잇는 사람인 어른이라면 ‘일하며 안 지쳐’요. 즐겁게 놀이를 하듯 즐겁게 일할 줄 아는 어른은 ‘지치는 일’이 없고 ‘고단한 일’이 없습니다. ‘일 아닌 돈벌이’만 하기에 ‘어른 아닌 늙은이’일 뿐 아니라, 언제나 힘겹고 지치고 나른하고 괴로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고 말아요.


  놀이하는 아이가 일하는 어른으로 피어납니다. 노래하는 아이가 사랑하는 어른으로 깨어납니다. 놀며 노래하는 아이가 살림을 짓고 숲을 품는 어른으로 눈뜹니다.


  놀지 못 한 아이는 그만 늙은이로 시들시들합니다. 노래를 못 부른 아이는 어느새 팍삭 늙어서 아프고 맙니다. 놀지 못 하고 노래하지 못 했으니 사랑이 아닌 ‘짝짓기’만 하려고 눈먼 몸짓에 허덕입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노래님입니다. 어린이가 입으로 읊는 모든 말은 노래입니다. 어린이가 읊는 즐겁거나 슬픈 모든 말을 글로 옮기니 저절로 노래(시)를 이룹니다. 따로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읊는 말씨를 글씨로 담아내면 됩니다. 구태여 종이에 글을 얹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을 잇고 살려서 이야기로 여미니 어느새 글자락으로 태어날 뿐입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노래하는 아이 곁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낳은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를 모두 상냥하게 마주하면서 하루를 짓는 빛나는 살림꽃을 도란도란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환하게 웃을 테지요.


  아이들은 ‘직업훈련’이 아닌 ‘살림짓기’를 보고 듣고 함께하면서 자랄 적에 어른으로 섭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일자리(직업)를 알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놀이판을 마련하고, 노래판을 갖추어서, 마당이 넉넉한 보금자리를 가꾸면 됩니다. 나무를 심을 마당이 있어야 어른이라 할 살림입니다. 풀꽃을 곁에 두고 벌나비를 부르는 오늘을 지어야 어른스럽다고 할 삶입니다. 풀벌레랑 개구리하고 동무하면서 같이 노래하고 춤추기에 바야흐로 어른답게 빛나는 눈망울입니다.


  노래는 숲에서 흐릅니다. 살림은 숲에서 얻습니다. 말은 숲에서 태어납니다. 마음은 숲을 품으면서 푸릅니다. 생각은 숲하고 한동아리로 흐르면서 빛납니다. 사랑은 숲하고 사람이 한몸에 한마음인 줄 깨닫는 자리에서 씨앗 한 톨로 돋아납니다.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쓰고, 노래를 읽기로 해요. ‘시·동시·문학’이 아닌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누기로 해요.


ㅅㄴㄹ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기쁨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를 쓸 수 없읍니다. 어른들은 생명을 짓밟고 죽이기를 예사로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차츰 나이 많을수록 사람은 이상하게 되어 갑니다. (4쪽)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 속에 살면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들가 함게 개구리소리도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로 느끼고 들었읍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에서 떠나, 사람이 만들어 낸 기계적인 환경에서 기계들이 내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지요. (12쪽)


“여자 놓든 남자 놓든 / 엄마 마음대로 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하고 한탄하다가도 결연한 말로 “설움만 받고 크는 아기 / 어째서라도 나는 / 아기를 키우고야 말겠다.” 이처럼 맺고 있는 이 아이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74쪽)


만약 어른들이 아이들을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여 삭막한 콘크리트 집 안에 가둬 놓고는,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공부라고 하여 머리에 쑤셔넣고, 점수따기 경쟁을 채찍질로 시켜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병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이치를 저절로 느껴 아는 놀라운 시인이 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137쪽)


생활을 얘기하는데 자연이 저절로 나타나 있고, 자연을 얘기하는데 삶이 그 속에 저절로 표현되어 있는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지요. (159쪽)


머리로 시를 만들어 내어서는 안 되고, 사실과 진실을 정직하게, 즉 가슴으로 온몸으로 써야 하지만, 아직도 어른들은 머리로 글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199쪽)


여기에는 시 같은 것을 써 보이려고 어떤 몸짓을 하거나 말재주를 부린 흔적이 없읍니다. 시는 이런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 이것이 시의 마음입니다. 시의 길이 곧 사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2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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