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숲노래 책마실


여름꽃 (2021.7.17.)

― 제주 〈몽캐는 책고팡〉



  제주섬 곽지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습니다. 어제 이야기꽃은 즐거이 마쳤습니다. 제주바다를 보러 제주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주책집을 찾아가려고 제주에 왔습니다. 부릉부릉 쇳덩이가 아닌 두 다리로 이 책집하고 저 책집 사이를 잇는 길을 달리면서 이 고장이 어떤 숨결로 흘러가는가를 느끼고자 합니다.


  오늘 달릴 길을 어림하자니 일찌감치 나서야 합니다. 등짐 책무게를 얼마 줄이지 못 했으니 쉬엄쉬엄 달리며 등판하고 다리를 쉬자고 생각합니다. 사락사락 발판을 굴러 느슨히 나아갑니다. 바닷가하고 등지면서 한라산을 바라보는 길을 달립니다. 나즈막한 바닷길은 수월할 테지만, 바닷길은 부릉이도 사람도 많기에, 부릉이도 사람도 적을 길을 살펴서 달립니다.


  구경터가 아닌 마을 고샅으로 들어서니 한갓집니다. 골목집을 지나고, 우람하게 선 마을나무 곁을 스치고, 땀비를 길바닥에 쏟으면서 스륵스륵 나무숲 사이 조용한 길에 섭니다. 제대로 길을 짚으면서 가는지 엉뚱하게 헤매며 서귀포 쪽으로 빠지는지, 제자리에서 맴돌듯 헤매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오가는 부릉이가 드문 길을 나무로 둘러싼 데에 문득 서면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더라도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갈 곳을 잃고 거꾸로 달렸으면,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 됩니다. 오르막에 또 오르막이 나와 “으째 책집이 아닌 한라산으로 가는가베.” 싶으면 그만 오르다가 등짐을 내려놓고 고무신을 벗고 발바닥을 쉽니다. 풀밭에 앉아 글종이를 꺼내어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아마 과오름을 지난 듯싶고, 고내봉을 에도는 듯싶습니다. 이러다가 농협하고 더럭어린배움터를 봅니다. 옳거니, 아주 어긋나게 헤매거나 돌지는 않았군요. 어린배움터 옆길을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커다란 짐차를 다 보내고서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드디어 〈몽캐는 책고팡〉에 이릅니다. 그러나 마침 오늘은 책집을 안 여는 날인 듯싶습니다. 자전거는 돌담에 기대어 놓고서 돌담꽃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닫힌 책집 둘레를 서성이면서 무릎이랑 허벅지랑 허리를 토닥입니다. 어디 우체국이 있어 책짐을 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돌담을 낀 고샅에 나무가 크고, 바람은 나뭇잎을 후루루루 흔들며 싸락싸락 물결소리 같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땀이 다 식습니다. 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굽니다. 이다음 제주마실을 하는 길에 들를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책집이 깃든 마을을 천천히 한 바퀴를 돕니다. 이렇게 이룬 마을에 이렇게 책집이 깃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손을 흔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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