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쓸모 있을걸 창비아동문고 60
이오덕 지음, 이혜주 그림 / 창비 / 1984년 10월
평점 :
절판


이오덕 읽는 하루

― 씨앗을 심는 어린이



《이사 가는 날》

 이오덕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4.10.30.



  《이사 가는 날》(이오덕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4)은 어린이·푸름이 글모음입니다. 이오덕 어른이 가르친 아이들이 쓴 글도 모으고, 한국글쓰기연구회 길잡이로 지내는 분이 가르친 아이들이 쓴 글도 모읍니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책에는 책자취(판권)에 “편자와의 협약에 의해 검인 생략” 하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펴냄터인 창작과비평사(창비)는 1990년에 바뀐 한글맞춤길에 따라 책을 모두 판갈이를 해야 하던 무렵부터 슬그머니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창작과비평사(창비)가 이렇게 ‘저작권 훔침질(도용)’을 한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1984년에 처음 글모음을 선보일 적에는 ‘책 끝에’라는 이름으로 어린이·푸름이가 쓴 글이 어느 꾸러미(학급문집)에 실렸는지 낱낱이 밝혔는데,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하던 무렵부터 ‘책 끝에’도 슬그머니 잘라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창비아동문고’에 어린이글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어른들이 쓴 글만 어린이한테 읽혀서는 안 되고,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 삶을 밝힌 어린이 목소리를 여럿 꾸준히 선보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손수 《이사 가는 날》을 비롯한 여러 글모음을 엮어서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선보여서 받은 글삯은 모두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펴내는 달책(회보)을 펴내는 밑돈으로 삼았어요. ‘글쓰기 회보’라고 줄여서 가리키는데, 이 글쓰기 회보는 바로 ‘어린이 목소리를 살리고 사랑하는 줄거리’를 담는 작은 책이었습니다.


  창작과비평사(창비)는 이오덕 어른이 엮은 글모음을 1984년에는 ‘매절 계약’으로 냈습니다. 그무렵에는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법을 제대로 지키는 곳이 없다시피 했어요. 그러나 예전에도 틀(법)은 버젓이 있었고, 2000년부터는 ‘세계저작권협약’을 지키기로 한 우리나라이니, 늦어도 2000년부터는 이 틀을 어겨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앞서 맺은 출간계약이라 해더라도 ‘매절계약은 무효이고, 그 뒤 새로 찍어서 매절 계약금을 넘게 나온 글삯(인세·저작권료)은 돌려받기(소급적용)를 할’ 노릇입니다.


  창작과비평사(창비)는 저작권법을 크게 어겼을 뿐 아니라 성명표시권(저작권자 표기)까지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한두 해도 아닌 거의 스무 해를 이렇게 했지요. 그러나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는 이 말썽거리를 쉬쉬했고,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는 이제 더는 이오덕 어른 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 끊었거든요.


  어린이 숨결을 헤아리는 눈빛을 어린이가 스스로 쓴 글을 사랑어린 손길로 살펴서 여민 아름책인 《이사 가는 날》은 이제 다시 나오기 몹시 어려울 듯싶습니다. 헌책집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헌책집이 있기에 새로 만날 수 있고, 헌책집이 있어서 두고두고 되읽히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책숲(도서관)은 《이사 가는 날》처럼 오랜 책은 쉽게 버리거든요.


  1984년에 태어난 《이사 가는 날》은 1970∼80해무렵이라는 나날을 살던 어린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느낄 값진 이야기씨앗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이를 깎거나 낮추려는 고약한 틀이 단단했는데, 어린이가 조용히 남긴 글자락에는 ‘어머니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아버지’를 나무라는 이야기가 줄줄이 흐르고, ‘딸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에 눈물젖다가도 새로 기운을 내어 ‘어린 동생(순이)’을 언니로서 씩씩하게 돌보겠노라 다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른답지 못 한 사람들을 꾸짖는 착한 마음을 어린이 글자락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고 수수한 어린이 글모음 《이사 가는 날》은 1970∼80해무렵에 어린이·푸름이로 살던 맑은 숨빛이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 이 집을 이렇게 바꾸어 사랑이 흐르는 아름터로 바꾸겠노라’ 하는 따사로우면서 듬직하면서 상냥하면서 환하면서 고운 마음이 듬뿍 흘러나온다고 할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아이였으나 오늘날에는 어른이 되어 이 나라를 새롭게 가꾸는 손길을 이 글모음으로 돌아볼 만합니다.


  저는 1982∼87년에 어린배움터를 인천에서 다녔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랑 신포시장으로 버스를 타고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안 태우고 내쫓는 버스일꾼하고 차장’을 곧잘 보았습니다. 참말로 그때 적잖은 버스일꾼하고 차장은 ‘버스에 타려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대놓고 “이그, 늙었으면 집에서 드러눕거나 자빠질 것이지 뭣 하러 돌아다녀? 언제 죽으려나 몰라?” 하고 떠들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고 참 싫었습니다. 그러나 따지지 못 했어요. 그무렵에 어린이가 이런 엉터리짓을 따지면 억센 주먹으로 얻어맞았거든요. 사납고 무서운 주먹에 눌려 끽소리를 못 하던 지난날 아이들이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제가 새파랗게 질리면서도 말을 참는 줄 느꼈고, 이다음 저잣마실을 할 적에는 버스를 안 타고 한참 걸었습니다. “안 힘드니?” “네, 안 힘들어요. 해를 보고 바람을 쐬니 좋은걸요.” “그래, 그 사람들은 저희도 늙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줄 모르나 봐.” “네.” 어머니는 더 말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이러다가 버스에서 차장이 사라졌습니다.


  1984년이면 저로서는 어린배움터 3학년인 나이인데, 그때에는 《이사 가는 날》 같은 글모음이 있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해에 《몽실 언니》가 나왔으나,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창비아동문고’라는 책은 1994년에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서 번역가·통역사가 될 꿈으로 네덜란드말을 배우던 무렵,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제대로 익히려고 하면서 이오덕 어른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랑 《일하는 아이들》이랑 《삶과 믿음의 교실》을 만나면서 비로소 알았어요. 1994년 봄날 헌책집에서 《이사 가는 날》에 《우리 반 순덕이》에 《나도 쓸모 있을 걸》 같은 어린이 글모음을 만나서 읽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어요. 어린이일 적에 만나지 못 한 아름다운 글을 만나서 눈물이 흘렀고, 1984년 언저리에 ‘어린이가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내도록 곁에서 사랑으로 보살핀 어른이 있었구나’ 싶어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울었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그저 사랑입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오롯이 마음을 담은 살림꽃입니다. 사랑을 놓고서 대단하다거나 안 대단하다고 가를 수 없어요. 살리는 꽃송이를 보면서 훌륭하다거나 안 훌륭하다고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은 늘 사랑이고, 꽃은 언제나 꽃입니다.


  어린이는 늘 사랑이기에 어린이는 모두 ‘노래님·놀이빛’입니다. 구태여 ‘시인·가수’ 같은 허울스런 이름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모두 노래하고 놀이합니다. 어린이는 모두 꽃으로 피어나고 마음밭에 꿈씨앗을 심습니다. 어린이는 천천히 자라나면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기에 철이 드는 어른으로 섭니다.


  그래요, 철이 들기에 어른이고, 철이 안 들기에 늙은이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할 줄 알기에 어른이요, 어린이를 때리거나 괴롭히기에 늙은이입니다.


  오늘날에는 어린이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서 책으로 여미는 어른이 몇쯤 있을까요? 이 터전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꾸어 내고픈 꿈을 씨앗으로 마음에 심는 어린이가 스스로 빛내면서 쓰는 글자락을 눈여겨보고 품는 어른은 몇쯤 있는가요?


ㅅㄴㄹ


무용이 다 끝나고 집에 와 보니 아버지께서 세수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굴 속에 들어가셔서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탄을 캐내고 월급은 조금밖에 없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아버지―강원 사북국 5년 박영희/59쪽)


내가 1학년 때 부산 망미동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진주보다 부산이 더 좋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인심도 없고 사치만 하고 돈밖에 모르고 자기들만 아는 체하고 옥에 갇힌 것같이 갑갑했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와 보니―부산 감전국 6년 정희웅/98쪽)


할머니께 “할머니는 무거운 것 들고 힘드실 텐데 왜 걸어가셔요? 차 타고 가시지요.”라고 여쭈었다. “뭐 오래 걸린다고 버스 타고 다니냐? 돈 아깝게…….” 어떤 아주머니는 짐 하나 없이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 타고 다니는데 우리 동네 할머니는 한 시간도 더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신다 … 그러면 왜 그러실까? 내 생각으로는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를 타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셔서인 것 같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께서 버스를 타려고 하니 차장 아저씨가 못 타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버스 안이 비좁기는 했어도 할머니 한 분이 탈 자리는 있었건만 “늙은이가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녀?” 하며 태워 주지 않았다. (우리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충남 대천여중 3년 김선미/117쪽)


우리 소는 내가 소를 먹이러 가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그렇게 해서 매일마다 간다. 우리 소는 연한 것을 좋아한다. 소가 어떻게 먹이를 먹는지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까 연한 것을 먹고 난 다음 가만히 있다가 다시 올려서 씹는다. (우리 집 소―성주 대서국 4년 유해정/182쪽)


내 동생은 “오늘은 저녁놀이 깊게 잠을 자는구나. 어제 늦게 동안 물이 들어 피곤해서 잠을 자는구나.”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로 우리들은 저녁놀을 좋아했다. 나는 저녁놀을 향하여 “저녁놀아! 저녁놀아! 아름다운 저녁놀아! 내일도 모레도 저녁놀이 끼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해 다오!” 하고 힘차게 외쳤다. (해질 무렵―경북 의성국 5년 김희정/200쪽)


나는 죄인을 착하게 만드는 것은 감옥도 아니고 법률도 아니고 경찰관도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다만 사랑만이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사랑에 대한 것을 배우고 노래도 부르는데 그냥 듣기만 하고 부르기만 한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발장이 자베르 경감의 목숨을 살려 주었을 때 나는 정말 감동했다. 나에게 친절히 해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쉽지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레미제라블을 읽고―경남 거창 샛별국 5년 김성경/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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