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2023.1.28.

말꽃삶 6 자유



  우리 낱말책은 우리말을 실었다기보다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잔뜩 실었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말 ‘자유’를 국립국어원 낱말책에서 뒤적이면 다섯 낱말을 싣습니다.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

자유(子游) : [인명]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유학자(B.C.506∼B.C.445?)

자유(自由) :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2. [법률]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3. [철학]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

자유(自有) :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유(刺楡) : [식물]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첫 올림말로 삼은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인데, 더 뒤적이면 “염구(?求) : [인명] 중국 춘추 시대의 노나라 사람(?~?)”처럼 풀이합니다. 중국사람 이름 둘을 먼저 올림말로 삼아요. 참 엉터리입니다.


  둘레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자유’는 셋째에 나오며 ‘自 + 由’ 얼개입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쓰는 낱말인 ‘자유’일 테지만,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기 앞서는 이 한자말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닌 우리말만 썼고, 임금이나 글바치만 중국말을 쓰던 고려·조선이거든요.


  사람들은, 아니 우리들은 지난날 어떤 낱말로 “얽매이지 않고서 마음대로 하는 길”을 나타냈을까요?


 가두지 않다·묶지 않다

 가볍다·무게없다·앓던 이가 빠지다

 가뿐하다·거뜬하다·사뿐대다·서푼대다

 거리낌없다·거리끼지 않다·망설임없다


  가두지 않습니다. 묶지 않아요. 가두지 않으니 가볍습니다. 무게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옛말에 “앓던 이가 빠지다”가 있어요. ‘가볍다’하고 비슷하되 결이 다른 ‘가뿐하다’나 ‘거뜬하다’가 있고, ‘거리끼지 않고’ 움직이거나 한다고도 말합니다.


 거저·그냥

 턱·턱턱·탁·탁탁·톡·톡톡·툭·툭툭

 고삐 풀다·그냥두다·기지개를 켜다

 끄르다·끌르다·벗어나다


  그냥그냥 합니다. 톡톡 뛰거나 튀듯 합니다. 고삐에 매이면 괴로울 뿐 아니라 마음껏 움직이지 못  해요. 고삐에서 풀리면 비로소 마음껏 움직입니다. 기지개를 켜요. 모든 사슬이나 굴레를 끌릅니다. 위아래로 가둔 틀에서 벗어나요.


 풀다·풀리다·풀어내다·풀어놓다·풀어주다·풀어보다

 나·나다움·나답다·나대로·나를 이루다

 스스로·스스로길·스스로하다


  남이 풀어 줄 때가 아닌, 스스로 풀어낼 때에 가볍습니다. 내가 나를 풀어놓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입니다. 나답고 나대로 나아가는 길이 바로 ‘자유’로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나를 이루”면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고 내가 하는 삶이에요.


 우리길·혼길·혼잣길·홀길·혼넋·혼얼·홀넋·홀얼

 혼자·혼잣몸·혼잣힘·혼자리·홀자리·홑자리

 홀가분하다·혼자하다·홀로하다·혼잣짓·혼짓

 홀·홀로·홀몸·홀홀


  우리가 쓰는 ‘우리말’이듯, 우리가 가기에 ‘우리길’입니다. 남한테 기대거나 매이지 않고서 가기에 홀길이요 홀넋입니다. 혼자요 혼잣힘으로 일굽니다. ‘홀가분하다 = 홀 + 가분하다 = 홀로 가볍다’입니다. 혼자·스스로·나·우리가 나아가면서 일어서기에 가뿐합니다. 홀홀 바람을 탑니다. 이리하여 하늘로 나아가는 혼짓입니다.


 하늘·하늘같다·하늘빛·하늘빛살

 나몰라·나몰라라·눈감다·눈치 안 보다

 나다·내놓다·안 하다·하지 않다

 날개·나래·날갯짓·날갯짓하다·나래짓·나래짓하다


  하늘빛을 담는 나다움이 있고, 이웃이며 동무 곁에서 눈을 감는 몸짓이 있습니다. 스스로 짓는 길이 아니기에 안 하기도 하지만, 그저 싫어서 하지 않기도 합니다. ‘나다 = 나 + 다’입니다. 내가 나로 갈 수 있을 적에 내놓을 수 있고, 훌훌 내려놓기에 날개를 날고서 훨훨 춤을 춥니다.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 = 나다 = 날개’로 이어가요. 날갯짓이자 나래짓입니다.


 날개뜨기·나래뜨기·날개펴다·나래펴다

 날다·날아다니다·날아가다·날아오다·날아오르다

 활개·활개치다·활갯짓·활짝·활활·훨훨

 너르다·너른·널리·넘나들다


  두 팔을 활짝 펴는 ‘활개’라 한다면 더없이 시원하게 가는 길입니다. 거리낌없을 뿐 아니라 스스럼없습니다. 스스로 하기에 밝습니다. 혼자 이루면서 아무런 짐을 얹지 않기에 가벼워요. 널리 바라보고 너른 숨결로 피어납니다.


 열다·열리다·트다·트이다·틔우다

 노래·노래하다·놀다·놀이·놀음·놀틈·뛰놀다

 놓다·놓아두다·놔두다·놓아주다·놔주다

 손놓다·손떼다·손빼다


  마음을 열면서 가는 길입니다. 탁 틔우는 하루입니다. 날 수 있기에 놀 수 있어요. 놀 줄 알기에 노래할 줄 알아요. 놀고 노래하면서 뜁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갈 적에는 허물도 흉도 놓을 수 있어요. 나는 나로 서고, 너는 너로 서요. 서로서로 놓아줍니다. 붙잡거나 거머쥐거나 사로잡지 않습니다. 가만히 손을 놓아요.


 누리다·누림·누리기·쉬다·쉬는때·쉴참

 말미·짬·참·담배짬·담배틈·새참·샛짬

 숨돌리다·한숨돌리다·잎물짬·잎물틈·쪽틈·찻짬·찻틈

 틈·틈새·틈바구니


  오늘을 누리는 살림새입니다. 이곳에서 차곡차곡 손수 지으면서 하나씩 누리니, 알맞게 일하고 즐거이 쉽니다. 새참을 누려요. 일하는 틈틈이 말미를 내요. 누구나 가볍게 참을 즐기고, 서로서로 숨을 돌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잎물을 한 모금 마시는 틈새가 있으니 새삼스레 기운을 차려요.


 뒷짐·뒷짐을 지다·앉다·호젓하다

 마구·마구마구·마구잡이·막·막하다·아무렇게나·함부로

 마음·맘·마음껏·맘껏·마음대로·맘대로

 실컷·얼마든지·한껏·한바탕·한탕


  그렇다고 뒷짐을 지지는 마요. 호젓하게 앉을 적에는 즐겁지만, 모르는 척 마구마구 굴거나 아무렇게나 한다면 어지럽습니다. 내 몫이라고 함부로 다룬다면 그만 망가져요. 우리 마음을 우리 눈으로 실컷 볼 일입니다. 얼마든지 춤추고 노래하면 됩니다. 한바탕 일어서고 한껏 꿈을 키워요.


 마음날기·마음날개·마음나래

 멋·멋나다·멋스럽다·멋꽃·멋빛·멋대로·제멋대로

 생각·알아서·잘·제대로

 물방울 같다·바람같다·시원하다·후련하다


  바람처럼 마음으로 나는 넋입니다. 멋스러이 자라나는 숨결입니다. 얼핏 보면 제멋대로 같으나, 잘 생각해 보면 물방울처럼 맑으면서 반짝입니다. 그러니까 나부터 나를 제대로 보면 되어요. 시원하게 털어내고 후련하게 씻습니다. 안 시켜도 알아서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갈고닦습니다.


 신·신명·신바람·즐겁다

 바람꽃·바람빛·바람새·바람이·어화둥둥·어둥둥

 바리바리·잔뜩


  나답고 홀가분한 날갯짓이란 신바람입니다. 신명나는 가락입니다. 신나서 활짝 웃습니다. 바람은 바람꽃일까요. 또는 바람빛일까요. 어화둥둥 덩실덩실 어깻짓이 가볍습니다. 바리바리 싸고 잔뜩 품다가도 새삼스레 바람이가 되어 하늘빛을 파랗게 머금습니다.

  노래하던 김남주(1946∼1994) 님이 남긴 노래 가운데 〈자유〉가 있습니다. 이분 노래 첫머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참다이 빛날 홀가분한 날갯짓을 노래한 글자락을 되읽으면서 “나는 자유이다”를 “나는 나이다”나 “나는 날개이다”로 새롭게 읊어 봅니다.


ㄱ. 이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나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ㄴ. 들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날개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날개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한자로 엮는 ‘자유 = 自 + 由 = 나·부터”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로 바라보는 얼개라면 단출히 ‘나’요, ‘나다움’이고 ‘나로서’이자 ‘날개·날다’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숲을 이루는 ‘나무’도 홀가분한 숨빛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늘을 바라보며 날갯짓을 하듯 가지를 마음껏 뻗는 나무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뿌리를 실컷 내리는 나무입니다. 하늘하고 땅 사이에서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활갯짓을 하듯 퍼지는 나무를 품어 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한결 푸르게 ‘나’로 서는 하루를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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