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곁에 그림책 (2022.9.19.)

― 부천 〈용서점〉



  어질기에 할아버지라고 느낍니다. 슬기롭기에 할머니라고 느낍니다. 착하기에 아버지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참하기에 어머니란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슬기로운 할아버지에 어진 할머니가 있고, 참한 아버지에 착한 어머니가 있어요.


  착한 아버지로 살자면, 바느질을 하면서 밥짓기·빨래하기를 노래하며 누릴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참한 어머니로 살자면, 뜨개질을 하면서 글쓰기·그림그리기로 삶을 가꾸어 아이하고 함께 놀 줄 알아야지 싶어요. 돈버는 일보다 집안일을 해야 빛나는 돌이요, 이름얻는 일보다 꿈그림을 빚어야 눈부신 순이라고 봅니다.


  전철을 타고 서울서 부천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깁니다. ‘비닐자루’가 나쁘대서 곳곳에서 치우려 한다지만, 막상 시골 밭뙈기는 비닐투성이에 비닐집입니다. 더구나 요 몇 해 동안 사람들 입을 ‘플라스틱 가리개’로 덮어씌웠습니다. 몇몇 분은 ‘플라스틱 가리개’가 나쁜 줄 알기에 ‘천 가리개’를 손수 뜨거나 지어서 썼는데, 나라(정부)에서는 ‘천 가리개’는 쓰면 안 되고 ‘플라스틱 가리개’만 써야 한다고 떠들었습니다.


  땅에 나쁜 비닐자루라면, 먹는샘물을 담은 페트병도 우리 몸에 나쁘고, 입가리개도 나쁠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스스로 눈을 뜨고 귀를 열며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부천 〈용서점〉에 닿아 수다꽃을 느슨히 폅니다. 우리 곁 그림책이란, 줄거리도 가르침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천천히 한 쪽씩 읽어 주면서 함께 즐겁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글을 떼면, 아이 목소리로 그림책을 누리면 새롭게 즐거워요.


  그림책도 만화책도 글책도 틀림없이 ‘아름책’하고 ‘장삿책’이 있습니다. 널리 알아보고 사랑하는 아름책이 있다면, 나라에서 우격다짐으로 ‘플라스틱 가리개’를 써야 돌림앓이에 안 걸린다고 뻥치듯 읽히는 장삿책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손길을 여미어 책을 쥐는 삶길인지 돌아봅니다.


  수다꽃을 펴며 자리맡에 빈책(공책)을 잔뜩 펼칩니다. 수다꽃을 마치고서 길손집으로 갈 적에는 빈책을 주섬주섬 다시 꾸립니다. 시골집을 떠나 먼길을 다녀올 적에는 이 길에 보고 듣고 겪고 배울 이야기를 적을 ‘빈책’을 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어야 알지 않습니다. 나무나 새한테 ‘플라스틱 가리개’를 씌우면 나무가 죽겠지요.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빛을 생각하고 참길을 그리는 하루을 지으면, 누구나 아름길을 깨달으면서 스스로 살림꾼으로 서리라 봅니다.


ㅅㄴㄹ


《비밀 친구》(달과 강, 어떤우주, 2022.9.16.)

《나는 매일 그려요》(이정덕·우지현, 어떤우주, 2022.7.16.)

《주머니 속의 詩》(황동규·정현종 엮음, 열화당, 1977.11.20.첫/1978.4.20.재판)

《레닌》(루카치 외/김학노 옮김, 녹두, 1985.6.15.)

《브레히트의 리얼리즘론》(베르톨트 브레히트/서경하 옮김, 남녘, 1989.1.25.)

《독일문화사》(W.피스만/양도원 옮김, 한마당, 1987.9.1.)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김성광, 걷는사람, 2019.2.22.)

《책숲마실》(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9.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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