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화수분제작소 지음 / 화수분제작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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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7.

인문책시렁 268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

 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쓴 분들은 아직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구나 싶더군요. 아직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 아니로구나 싶고요. 책집마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안 합니다. 그냥 책집으로 책마실을 갑니다. 책집마실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책집이 사라질 걱정’을 합니다.


  책집이 어떤 터전인가를 읽는 눈이라면, 책집마실을 할 적에 ‘아무 책이나 고르지 않’습니다. 책집이 마을에서 빛나는 길에 이바지할 책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고 장만할 줄 알기에 비로소 ‘책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책손’조차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래저래 잘 알려지거나 널리 팔리는 책을 ‘사들이는(소비하는)’ 사람은 ‘책손’이 아닌 ‘소비자’입니다.


  책집을 꾸리는 사람이 ‘책집지기’라는 이름을 스스로 쓰려면, ‘소비자한테 소비상품을 건네는 몫’을 넘어야겠지요. 책집지기는 늘 ‘팔리는 책을 팔아야 하느냐, 팔아야 할 책을 알려야 하느냐’를 놓고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책집지기라는 길이 ‘나라가 시키는 대로 졸졸 따라가는 허수아비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널리 알려진 책을 자랑하듯 잘 보이는 자리에 쌓아두는 짓을 안 합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책시렁’을 놓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려 한다면, 아직 ‘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집지기나 책손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려면, ‘읽고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바지하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훌륭한 책이나 아름다운 책이나 놀라운 책이나 멋진 책’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읽으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스스로 배우면서,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낼 살림을 짓는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책’을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삶을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책은 만화책일 수 있고 그림책일 수 있습니다. 사진책일 수 있고 노래책(시집)일 수 있습니다. 이름난 책일 수 있고, 묻혀버린 책일 수 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사읽는 책이 아닌, 우리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사읽을 책입니다. ‘눈치’란 무엇일까요? ‘이런 책을 읽어야 훌륭하다’는 눈치라든지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던데’ 같은 눈치가 있습니다. ‘세계명작이나 고전’이라는 눈치가 있고, ‘한국 작가를 읽어야 한다’는 눈치가 있어요.


  책집을 말하는 책을 쓰고 싶다면, ‘적어도 열 해에 걸쳐서 책집마실을 꾸준히 다니되, 적어도 이레마다 책집마실을 하루쯤 꼭 하면서, 적어도 이레에 두어 자락쯤 책을 읽는 나날’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집마실을 다니면서 책을 배울 적에 ‘책손’이라는 이름을 받고 싶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하고 알려준 ‘책어른’이 나라 곳곳에 꽤 있었습니다. 책어른이 알려주신 바로는, “‘책을 좀 본다’고 말하고 싶다면, ‘책집 손님’이라는 이름을 듣고 싶다면, 책집 한 곳을 스무 해는 다니고, 그 책집 한 곳에서만 사읽은 책이 3000 자락을 넘어야 하지 않을까?”입니다.


  우리 곁에 책집은 한 곳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책손’이려면, 여러 책집을 두루 누릴 줄 아는 다리품을 팔 줄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숱한 책’을 두루 넓게 깊게 헤아리면서 ‘추천도서 목록이 아예 없는’ 책살림을 지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ㅅㄴㄹ


‘책값은 결코 비싸지 않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다. 필요한 일이다. (30쪽/산책)


재미있는 건, 헌책방의 기억이 있는 50∼60대 동네 분들은 꼭 책을 사간다는 것이다. (36쪽/산책)


전에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어느 동네에 갔는데 쉴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들어가서 다리도 풀면서 차 한 잔 마실 곳이 없는 것이다. 결국 무더운 날씨에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동은 그런 동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 동네 정말 재미있다. 또 오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75쪽/딴뚬꽌뚬)


어떻게 보면 역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팔고 싶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은 안 팔리는 책이기도 하다. 안 팔리는 책을 사다가 판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책방에 자기계발서나 베스트셀러만 갖다 놓을 수는 없다. (85쪽/딴뚬꽌뚬)


같은 책을 동네책방에서 정가를 내고 살 때는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을 그만큼 포기하는 거다. 따라서 그만한 반대급부를 동네책방에서 제공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동네책방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116쪽/사각공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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